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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주님께 대한 두려움으로 세상 두려움을 이겨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8-10-18 조회수3,09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나해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주님께 대한 두려움으로 세상 두려움을 이겨라>  

 


복음: 루카 12,1-7


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어떤 임금이 체스 게임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서 체스를 가장 잘 둔다는 사람과 시합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기분 좋게 졌습니다. 임금은 다음번을 기약하며 이번에 이겼으니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신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사람은 체스 판 위에 나뉜 칸의 개수만큼 쌀 한 톨, 그 다음 칸엔 두 톨, 그 다음 칸엔 네 톨, 이렇게 체스 판이 다 찰 때까지 쌀을 주시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체스 판은 총 64개의 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임금은 너무 상이 작아 보였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체스 판의 반인 32개까지 칸이 차자 논 하나를 주어야 하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끝까지 가다가는 나라 전체를 빼앗기게 생긴 것입니다. 왕은 신하들 앞에서 한 약속이기에 어찌 해야 하느냐를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만약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약속을 잘 지켜 무일푼 거지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그놈을 칼로 쳐서 나라를 지키겠습니까? 약속을 지키던 그 약아빠진 사람을 칼로 치던 왕을 움직이는 힘은 ‘두려움’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 자신의 국민들로부터 욕을 먹는 두려움이 크면 약속을 지키겠고, 나라를 잃는 두려움이 크면 그 사람을 칼로 칠 것입니다. 어쨌든 인간의 모든 행동을 일으키는 힘은 두려움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어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것과 반대되는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으면 사람이 아닙니다. 배고파지는 두려움이 없으면 먹지 않을 것이고, 졸릴 두려움이 없으면 잠을 자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의해 지배되고 두려움 때문에 생존합니다. 차가 오는데 피하지 않거나 맹수가 다가오는데 도망치지 않는 토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두려움은 생존과 직결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려움이란 말을 ‘욕구’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욕구의 힘은 두려움입니다. 내가 어떤 이성을 사랑하여 결혼하기를 원한다면 그 원하는 마음 안에는 그 사람과 헤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하게 됩니다. 욕구를 충족시키게 만드는 힘이 두려움인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원하는 게 없으면 두려울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두려움 없이 사는 방법은 아무 것도 원하지 않으면 됩니다. 문제는 너무 원하지 않으면 공수병(물을 두려워하는 병)이나 거식증(몸이 음식을 거부하는 병) 등에 걸려 생존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조금만 원해야합니다. 굶어 죽지 않을 정도만 먹기를 원한다면 맛있는 것을 많이 못 먹을 것 같은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하루 천 원으로 살 수 있을 정도만 되면 가난해지는 두려움은 사라지게 됩니다.

 

      욕구는 두려움이기 때문에 또한 고통입니다. 많이 욕망하면 많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니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만 원한다면 그 두려움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많은 돈을 원하고 지나치게 많은 인기를 원해서 그것을 잃는 두려움을 견딜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욕구가 두려움이고 고통임을 안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욕구들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욕구는 저절로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욕구 총량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것을 덜 원하면 저것을 더 원해야합니다. 먹는 것을 덜 좋아하기 위해서는 그 욕구를 이길 다른 욕구를 찾아야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조금 더 나은 몸매가 되기를 원해야 음식량을 줄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것에 대한 욕구를 줄이려면 천상 것을 원하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 즉 욕망해야 할 대상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하느님을 욕망하는 만큼, 그래서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게 된다면 이제 세상 것은 두려워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그러니 이 세상 고통의 원인이 되는 욕망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입니다. 하느님을 욕망하면 세상 욕망이 사라집니다. 그렇기에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 은총인 것입니다. 성령 7은 중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 두려움은 하느님을 두려워함입니다. 이 두려움이 바로 세상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두려움인 것입니다.


      사람이 재물과 하느님을 동시에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를 사랑하면 하나는 미워해야합니다. 이는 나비가 되면 애벌레 때 좋아하던 잎사귀를 좋아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좋아지면 다른 것은 싫어집니다. 따라서 세상 것인 돈이나 명예 등을 좋아하면 그만큼 하느님은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두려워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세상 것을 잃는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느님만을 두려워합시다. 하느님만을 바랍시다. 그 두려움을 청합시다. 그러면 이 세상이 주는 고통에서 해방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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