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0.2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0-25 조회수2,104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8년 10월 25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제1독서 에페 3,14-21

형제 여러분,

14 나는 아버지 앞에

릎을 꿇습니다.

15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습니다.

16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17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18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19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20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21 그분께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세세 대대로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루카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인생은 BDC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인생은 Birth(탄생)과 Death(죽음)

사이의 Choice(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삶 안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선택을 하지 않습니까?

탄생이나 죽음만이

선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이렇게

선택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계속해서 주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삶에 완벽한 답안지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답을 써 내려가도 좋지만,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이라면 주님께서는

 “잘했다.”라면서

박수를 쳐 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책임지지 못하는

 선택을 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죄의 유혹에 넘어가서,

내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만을

내세우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요?

이는 책임질 수 없는 선택입니다.
어떤 남매가 떡 한 덩이를

나누어 먹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누가 떡을 잘라서

나눌 것인가 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이

똑같이 자르지 않고

자신에게 작은 덩이를

 줄까봐 의심하면서 서로

자르겠다고 우겼습니다.

하지만 결국 둘은 모두

만족한 상태로 떡을 나눠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자로 정확하게 쟀을까요?

아니면 제3자가 나서서

잘라 주었을까요?

모두 아니었습니다.

오빠가 자르고 동생이 먼저

선택하게 한 것입니다.

오빠는 동생이 먼저 선택하니

최대한 공평하게 잘랐을 것이고,

동생은 자신이 보기에

커 보이는 것을 선택할 테니

모두가 만족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면

절대로 상대방을

이해할 수도 없고

따라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주님으로부터도 “잘했다.”라는

소리를 듣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기준을 제시해주시지요.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주님께서는 선택의 몫을

우리들에게 주셨지만 책임을

 질 수 있는 선택을 하라고 하십니다.

이를 위해 당연히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해서 하느님의 편에

서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과정 안에서 때로는 악한 사람들과

분리될 수밖에 없으며 그들과 싸움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선택하면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평화가 아닌 분열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삶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책임을 질 수 있는 선택이 될 수

있을 지를 묵상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의 편에 서는 선택,

이 선택만이 주님의 지지와 사랑을

얻을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욕망은 우리를 자꾸자꾸 끌고 간다.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 끌고 간다.

우리의 불행은 바로 거기에 있다.

(루소)



어제 오신 순례객들을 찍었습니다.

88 강릉대도호부 관아(임당동)

관아는 넓은 의미로는

관원들이 모여 나랏일을 보던 곳

전체를 의미하지만,

좁게는 지방관이 파견되어

업무를 보던 곳을 말합니다.
강릉 대도보후 관아는

조선시대 강릉 대도호부 행정 기관이

위치한 읍치의 공간입니다.

1994년 강릉 임영관지라는 이름으로

사적 제338호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11월 27일 강릉 대도후부

관아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객사문인 임영관 삼문, 칠사당 이외에는

대부분 훼손된 것을 복원하였습니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는 조선시대

강릉에 있던 현재의 시청과 같은

역할을 하였지만, 사법권이 있어

죄인을 심문하거나 옥에 가두어

두었다는 것이 현재와의 차이점입니다.

그래서 관아에서는 박해 당시

신자들을 심문하기도 하였고,

어떤 이들은 관할 옥에서

순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심문도 없이 목이 잘리는

참수형으로 많은 교우들이

순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1868년

5월에 이유일 안토니오,

심능석 스테파노, 전성렬 바오로가

강릉에서 잡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들은 서울의 좌포도청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순교하였으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 순교한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인근에 관할 임당동 성당이 있습니다.

1955년에 완공된 이 성당은

고전미와 현대미가 조화를 이룬

수려한 건축물로 문화재 제 45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주소는 강원도 강릉시 임영로

131번길 6이고,

관할 성당은 임당동으로

전화는 033-642-0700입니다.

 


 

 


 

춘천교구 강릉대도호부 관아와 임당동 성당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