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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8-10-27 조회수2,911 추천수10 반대(0)

 

바티칸에는 시스티나 성당이 있습니다. 성당이 유명한 것은 그곳에서 교황님을 선출하기도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천정과 벽에 그려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현대사회의 도전과 신학동향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신 신부님께서 시스티나성당의 천정화인 천지창조를 통해서 교회의 가르침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하느님의 창조의 과정을 창세기의 여정에 따라서 그려 넣었습니다. 오늘은 강의의 내용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좋은 것을 나누는 것은 기쁨이 크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창조가 어둠과 혼돈(Chaos)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현대의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시작은 무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창조 역시 무로부터의 창조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어둠 속에서 물을 갈라놓았다고 합니다. 하늘에는 창공을 땅에는 물과 육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공간의 질서를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늘에는 해와 달을 만드셨다고 합니다. 이는 시간의 질서를 의미합니다. 낮과 밤이 있고, 주기와 계절이 있으며 이를 통해서 시간의 역사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물리학자들도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시간과 공간도 상대적이라고 합니다. 그런 상대적인 시간과 공간의 질서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물에는 많은 물고기가 살 수 있도록 하였고, 땅에는 식물과 동물이 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분화는 분열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하느님의 창조는 분화를 통해서 더욱 다양해지고, 더욱 풍요로워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보시니 좋았다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창조와 생명의 창조는 하느님의 선한 의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주의 만물은 그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한 의지로 생겨났습니다. 현대의 물리학자들도 관찰자의 의지에 의해서 에너지가 물질이 되는 것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의 에너지를 가지신, 자비의 에너지를 가지신 하느님의 뜻과 의로움이 천지창조로 드러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닮은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그 재능과 인품 때문에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기에 부족해도, 가난해도, 장애가 있어도 모두가 소중한 것입니다. 하느님을 닮은 인간은 하느님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가지는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이 하느님처럼 되려는 교만과 탐욕은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무시하는 것이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죄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도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절벽에서 뛰어내려보라는 사탄의 유혹에 하느님을 시험하면 안 된다.’라고 대답하시면서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에덴동산은 장소와 공간의 개념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함께하는 곳이 에덴입니다. 인간의 교만과 탐욕 때문에 하느님의 창조질서가 깨지는 곳은 에덴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에덴동산은 상태의 개념입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 줄 알고 있다면,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그곳이 바로 에덴동산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깨버리는 인간의 탐욕과 교만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인간을 정화하려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협력하는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의지입니다. 옹기그릇은 옹기를 만드는 사람의 의지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옹기의 기능과 용도는 전적으로 용기를 만드는 장인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자기와의 대면의 시간인 고독을 두려워하며, 매스컴과 광고의 홍수 속에 불어만 가는 물욕과 갈등으로 마음의 평정을 찾을 길 없고, 공간적, 시간적 사회의 분열과 단층은 갈수록 심화되어 불안과 고독감은 가중되며, 마음은 더욱 어지러워져서 진정제와 수면제의 판매량과 정신 분석의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고전 물리학을 뒤따른 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물질의 풍요를 가져왔지만 그에 수반한 결정론적, 기계론적 세계관은 인간의 마음과 정서를 경시하는 풍조를 일게 했으며, 시대가 경과함에 따라 심화되는 이 물심의 불균형은 드디어 현대 문명에 난치의 중병을 초래한 것입니다.

 

인간의 교만과 탐욕으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환경의 파괴는 자연의 질서를 혼돈으로 몰아넣었으며 자연은 인간에게 재해로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만이 하느님의 정화와 심판이 아닙니다. 바벨탑의 사건만이 하느님의 경고가 아닙니다. 자연은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땅은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야하는 소중한 터전인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선한의지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웃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친교와 봉사를 인간이 따라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고, 용서받기보다는 용서할 줄 아는 신앙생활은 우리가 어느 자리에 있어도, 어느 시간에 있어도 신앙의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신앙의 꽃은 기쁨, 평화, 감사입니다. 우리는 이 신앙의 꽃을 힘들고 지친 이웃들에게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직분의 제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서 가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라는 과정을 통해서 나는 지금 하느님의 편에 있는지, 아니면 악의 그늘에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회개를 통해서 나는 좀 더 겸손해 질 수 있고, 주님께로 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 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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