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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0.2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0-28 조회수2,160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8년 10월 28일

연중 제30주일

제1독서 예레 31,7-9

7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야곱에게 기쁨으로 환호하고

민족들의 으뜸에게 환성을 올려라.

이렇게 외치며 찬양하여라. ‘

주님, 당신 백성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소서!’
8 내가 이제 그들을 북녘땅에서

 데려오고 땅끝에서 모아들이리라.

그들 가운데에는 눈먼 이와

다리저는 이 아이를 밴 여인과

아이를 낳는 여인도 함께 있으리라.

그들이 큰 무리를 지어

이곳으로 돌아오리라.

9 그들은 울면서 오리니

내가 그들을 위로하며

이끌어 주리라.

물이 있는 시냇가를 걷게 하고

넘어지지 않도록 곧은길을

 걷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었고 에프라임은

나의 맏아들이기 때문이다.”

제2독서 히브 5,1-6

1 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

곧 죄 때문에 예물과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2 그는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연약한 탓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4 이 영예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
5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가 되는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께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6 또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복음 마르 10,46ㄴ-52

그 무렵

46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9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50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51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52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이런 유머를 하나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한국인에게

“겨울의 혹독한 추위가 네 것이냐?”

라고 묻자, “아닙니다.

시베리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미세먼지가 네 것이냐?”라고 묻자,

“아닙니다. 중국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지요.

마지막으로 “한 여름의 폭염은 네 것이냐?”

라고 묻자, “아닙니다. 북태평양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착하고 정직한 한국인이구나.

 그러니 다 너희가 가져라.”라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금도끼 은도끼’ 우화를 약간 바꿔서

 작성된 글로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늘 남 탓을 외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남 탓을 외친다고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남 탓을 하기 전에 지금의 상황을

최선의 상황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먼저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남 탓은 다른 이들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그래서 성 바실리오 성인께서는

질투를 통해 생기는 결과를

다음의 세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 개인의 우울입니다.

부정적인 마음으로 인해서

결코 기쁨을 살 수가 없습니다.
둘째, 거짓이 증가하게 됩니다.

질투는 거짓도 진실로

만들려는 억지를 가져옵니다.
셋째, 자기가 받은 선물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능력에

빠지게 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와

그 주위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묵상해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가 있었지요.

그래서 더욱 더 가까이에 있고 싶었고,

더 많은 말씀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앞을 보지 못하는

거지 한 명이 큰 소리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루카 10,47)라고 외쳤고,

 예수님께서는 이 바르티매오를

부르셔서 그가 원하는 대로

볼 수 있게 해주십니다.
이런 바르티매오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떠올려봅니다.

사람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

그리고 가진 것 없는 거지의 모습을

 하느님의 벌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외치는

바르티매오에게 ‘너는 자격이 없으니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그를 부르시는 주님의

말씀에 사람들은 서운하지 않았을까요?

 별 볼 일 없는 사람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는

예수님께 실망한 사람들도 많았겠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씀처럼 눈먼 이와 다리 저는 이를

위로하며 이끌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레 31,8.9 참조).
이렇게 질투를 느낀다면 주님과

관계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앞서 바실리오 성인의 말씀처럼

부정적인 마음이 생기면서 우울해지고,

주님에 대한 잘못된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삶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전혀 깨달을 수 없게 되지요.

그리고 실제로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이런 모습을 취했으며,

그 결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우리 역시 어렵고 힘들어하는

이웃을 주님과 만나지 못하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어렵고 힘들어하는 이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주님에 대해

안다면 교회 안에 어렵고 힘들어하는

이들이 오는 것을 절대로 막아서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그들이 교회 안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친교를,

그것도 여유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을 판단하고

단죄하면서 주님 곁으로 가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질투의 삶이 아닌

주님께서 늘 강조하신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사랑에 주목하면서

나 역시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르티메오의 믿음은 어떠한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뜻을 따라

사랑을 실천할 때 이러한

말씀을 듣지 않을까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르 10,52)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빅터르 위고)





갑곶성지에서 순례객들과 함께...

91 죽림동 주교좌 예수성심성당.

죽림동 주교좌성당의

전신은 곰실 본당입니다.

곰실 본당은 1920년 9월 22일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된 공동체이며,

 활발한 전교 활동을 하고자

현재의 자리로 본당을

이전하였습니다.
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 곰실에 공동체를 이룬

엄주언 마르티노입니다.

그는 청년시절 우연히 천주교

서적을 읽고 구도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여 가족과 함께

천진암으로 가서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천주학쟁이로

냉대를 받으며 고향에서

 쫓겨난 그는 고은리의

한 폐가를 사서 정착한 후

자선과 모범적 신앙생활로

이웃들을 감화시켜 300명에

가까운 신자가 생겼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1920년

공소를 건립하고 상주사제 파견을

간청한 결과 그해 9월 김유룡

초대 주임 신부를 모시고

춘천지역 최초의 본당이 되었습니다.

신부님을 모시고 더 활발한

전교활동을 위해 현 죽림동성당

아래에 터전을 마련하여 1928년

5월부터 춘천의 첫 성당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죽림동으로 이전한 신자들은

모범적인 생활과 자기희생적인

 생활을 통해 신자들을 늘려갔고,

명도회를 통해 조직적이고 열성적인

전교의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춘천의

전 지역을 공동체로 하는 본격적인

전교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큽니다.
성당은 1949년 4월 5일

신축 기공식을 가지고

거의 완공 단계였으나,

전쟁이 일어나면서 성당 한쪽 벽이

무너지고 사제관과 부속 건물이

대파되었습니다.

또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던

 구 토마스 교구장을 비롯하여

외국인 사제, 수녀 등 수백 명이

끌려가는 죽음의 행진을

해야만 했습니다.
1951년 전란으로 무너진 성당을

제13대 주임으로 부임한

커머포스 토마스 신부님이

복구하기 시작하여,

1956년 6월 8일 죽림동성당의

주보 축일 예수 성심 대축일에

축성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죽림동 주교좌 성당의 뒤뜰에는

교구 성직자 묘역이 있는데,

이곳은 춘천교구에서 활동하다가

선종한 사제들이 잠든 곳인 동시에

신앙을 증언하고 목자로서의

소명을 다하려고 애쓰다가 희생된

순교자들이 함께 모셔진 곳입니다.

이 묘역에는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희생당한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사제 3명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고

북한 지역에서 순교하여 유해를

모실 수 없었던 사제 4명의

가묘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미사는 본당 미사로 봉헌되고 있습니다.

주소는 강원도 춘천시

 약사고개길 21,

전화는 033-254-2631입니다.


 

 






춘천교구 죽림동 주교좌 예수성심성당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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