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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천주교회 희망의 아이콘 최양업(토마스) 신부 선종 157주년 추모(6)
작성자박관우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01 조회수1,946 추천수1 반대(0) 신고

1836년 12월 3일 3명의 신학생을 포함하여 정하상(바오로), 조신철(가롤로) 등이 동행하였으며, 조선에서 물의를 일으켰던 중국인 유방제 신부 등 총 8명이 일행이 되어 서울을 출발하였다.

 


개성과 황해도 지방을 지나 의주성을 몇 십리 비켜 놓고 압록강 하류 편으로 길을 접어 들어 12월 28일 의주 변문에 도착하여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을 밟았다.

 


일행들은 이미 변문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던 샤스탕 신부를 만났으며, 중국인 안내원의 도움으로 봉천 산해관을 지나 북경에 도착하여 몇일의 휴식을 마친 이후 다시 길을 떠나 천진 제남을 거쳐 남경에 도착하니 여러명의 신부들이 그 일행을 반가이 맞아 주고 격려해 주었다.

 


다시 길을 재촉한 일행은 항주를 거쳐 소주로 왔는데 특히 소주는 중국에서도 경치가 좋기로 손꼽히는 고장으로서 가을달 비치는 동정호가 있는가 하면 춘색을 자랑하는 아미산의 절경은 한 폭의 그림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소주를 지난 이번에는 하문에 도착하였는데 하문은 동지나 해와 남지나 해 사이에 있는 항구도시였다.

 


하문에서 다음 도착지인 광동까지는 멀고도 멀었는데 말씨도 다르고 인물도 북쪽과는 달랐는데 그 먼길에 벙어리가 되다시피 잠잠했던 신학생들이 남경에서부터는 서고간에 이야기도 하였으며, 안내원을 통하여 중국말을 배우기도 하였다.

 


이러한 오랜 여정을 거쳐 일행이 마카오에 도착한 것은 서울을 출발한지 7개월이 되는 1837년 6월 6일이었다.

 


어린 신학생들에게 이러한 여정은 생후 처음 겪는 고생길이었으며, 만리가 넘는 도보 여행 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건강하게 최종 목적지인 마카오에 도착한 것인데 마카오는 일명 오문이라고도 하는 포르투칼의 조차지로서 서구인들의 동양 진출의 유일한 관문이었다.

 

 

거기에는 파리외방전교회 동양 경리부가 있었는데 경리부장 리브와 신부는 페랑 신학교의 중국인 신학생들의 정신이 좋지 않으므로 신학생들은 조선 교구장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신부들로부터 수학하게 되었는데, 구체적으로 칼르리 신부와 데플레시 신부의 지도를 받도록 하였으며, 이리하여 본격적으로 마카오 신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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