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11월 2일/둘째 미사(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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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11-02 | 조회수1,80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11월 2일 [(자)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 둘째 미사] (『로마 미사 경본』: 943-946면 『미사 독서』3: 460-470면 ) 죽은 모든 이, 특히 연옥 영혼들이 하루빨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이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오늘 세 대의 위령 미사를 봉헌해 왔다. 이러한 특전은 15세기 스페인의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시작되었다. 교회는 ‘모든 성인 대축일’인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정성껏 묘지를 방문하여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말씀의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진리를 깨닫고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는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멍에를 메고 당신께 배우면 안식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다.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가득 차 있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진리를 깨닫고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화답송◎ 시편 116(114─115), 5-6.10-11.15와 16ㄱㄴㄹ(◎ 9) 살아 있는 이들의 땅에서 걸으리라. 우리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네. 주님은 작은 이들을 지키시는 분, 가엾은 나를 구해 주셨네. ◎ 나는 주님 앞에서 걸어가리라. 살아 있는 이들의 땅에서 걸으리라. 되뇌면서도 나는 믿었네. 문득 놀라 나는 말하였네.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 ◎ 나는 주님 앞에서 걸어가리라. 살아 있는 이들의 땅에서 걸으리라. 주님 눈에는 참으로 소중하네. 아, 주님, 저는 당신의 종. 당신이 제 사슬을 풀어 주셨나이다. ◎ 나는 주님 앞에서 걸어가리라. 살아 있는 이들의 땅에서 걸으리라. ◎제2독서◎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말씀입니다. 5,17-21 17 한 사람의 범죄로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충만히 받은 이들은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많아지게 하였습니다.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지배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로움으로 지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환호송◎ 마태 11,25 참조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복음◎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복음입니다. 11,25-30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얻을 것이다.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오늘의묵상◎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복음서에서 가장 위로가 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성당에 다니는 개인적인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신앙생활은, 삶에 지치고, 상처받으며 고통을 겪는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비록 열심히 기도 생활은 못해도 주일 미사만큼은 빠지지 않으려 하고, 묵주를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판공성사의 의무라도 지키려는 데에는, 신자로 사는 것이 그래도 위로와 행복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늘 교회의 방식대로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다고 믿어도 그분이 느껴지지 않고, 교회의 가르침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이념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은 역동적인 현대인의 삶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고, 교회 생활은 동료 신자와의 관계와 인맥이 끊기면 냉담의 길로 들어서는 사회생활의 일부로 느껴집니다. 새로운 박해의 시대입니다. 배교의 칼날 앞에 용맹하게 신앙을 증언한 순교자들의 시대와는 다릅니다. 현대는 교묘한 방법으로 하느님을 부정하고, 신앙을 개인적인 취향으로 둔갑시키며, 교회를 제도와 규율로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조직으로 끌어갑니다. 현대의 악은 인간의 영혼을 죄와 불순종의 종으로 만들고, 하느님 없는 삶을 꿈꾸게 합니다. 뜻이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어지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났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무거운 짐과 멍에를 벗는 지혜를 당신의 십자가의 길에서 배우는 철부지들이 참된 지혜를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는 예수님의 역설은 오직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만이 얻게 될 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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