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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1.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04 조회수1,700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8년 11월 4일

 연중 제31주일

제1독서 신명 6,2-6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2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평생토록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그분의

모든 규정과 계명을 지켜라.

그러면 오래 살 것이다.
3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이것을 듣고 명심하여 실천하여라.

그러면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약속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가 잘되고 크게 번성할 것이다.
4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6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제2독서 히브 7,23-28

형제 여러분, 이전 계약의

 23 사제들은 죽음 때문에

직무를 계속할 수가 없어

그 수가 많았습니다.

24 그러나 그분께서는 영원히

사시기 때문에 영구한

제직을 지니십니다.

25 따라서 그분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살아 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빌어 주십니다.
26 사실 우리는 이와 같은

대사제가 필요하였습니다.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떨어져 계시며 하늘보다

더 높으신 분이 되신

대사제이십니다.

27 그분께서는

다른 대사제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치고 그다음으로

백성의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을 바치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28 율법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을 대사제로 세우지만,

율법 다음에 이루어진 맹세의

그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드님을 대사제로 세웁니다.

복음 마르 12,28ㄱㄷ-34

그때에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어떤 분께서 자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군대도 다녀왔으며 대학을

 졸업했는데 도무지 취업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집에서만

뒹굴뒹굴 놀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에는 얼마나 똑똑했는지

모른다고 또 부모의 말을 한 번도

어기지 않을 정도로

착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 아들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게 컸는데,

부모의 이런 기대를

저버리고 저렇게 집에만 있어도

너무 화가 난다는 것이지요.

부모로써 자녀에 대한 걱정은

 안 할 수가 없겠지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아들이 지금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랍니까?”
이 질문에 대답을 하시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들에 대한

불만만 가득해서 화만 냈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물어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아내는 남편을,

남편을 아내를, 직장 상사는

부하 직원을, 선생은 제자를,

정치가는 국민을... 내 자신만 맞다는

 정당성을 내세우면서 내게 맞추는

사람으로만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자신 탓이

아닌 상대방의 탓을 돌립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들어주고,

때로는 믿고 참으면서

기다려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들으려고

하기 보다는 더 많은 말을

하려고 하고 있으며,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찾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내세우는데

더 많은 힘과 정성을 쏟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사랑을

찾기가 힘든 것은 아닐까요?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마르 12,28)라는

한 율법 학자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신명기의 말씀인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신명 6,4)를 인용해서

하느님 사랑이 첫째이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서로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사랑한다면서

하느님의 창조물인 이웃을

미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첫째가는 계명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다고 대답하는

율법학자의 말(마르 12,33 참조)에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마르 12,34)

라고 말씀하시지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주님을 통해서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만이

 구원될 수 있다고 합니다.

(히브 7,25 참조).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당연히

주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이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나 중심으로만

이루어질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들어줘야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일까요?

또한 내 말만 잘 듣는 이웃에게만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일까요?

이런 조건들이 채워지는

 사랑만을 주장한다면 마치

 장사꾼처럼 흥정이나 거래를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동등한 관계가 아닌 내가

우위에 서서 종을 대하듯이

행하는 잘못된 사랑입니다.
사실 주님께서 우리를

배신한 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분을 배신하는 것은

 늘 우리의 몫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까지 기꺼이

짊어지는 사랑을 보여주셨지만,

우리들은 조그마한 상처에도

불평불만을 터뜨리며 주님을

힘들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계속 기다리십니다.

죄를 지으면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서 기다리셨고,

우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또 우리에게 당신의 더 큰 사랑을

전해주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이제는 올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중심에

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그리고 나의 이웃을

중심에 세워서 사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 우리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우주를 단 한 사람으로

축소하고,

 한 사람을 신으로 확대하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빅토르 위고)





어제 오신 순례객들과 함께...

98 새남터 순교성지

새남터 순교성지는

 한국 교회 역사상 순교한 성직자

열네 분 가운데 열한 분이

순교한 곳으로 이 가운데

여덟 분과 교회 지도자급

 평신도 세 분이 성인 반열에 오른

한국의 대표적인 순교성지입니다.

한양성 밖 남쪽 한강변에 있던

새남터는 본래 노들 혹은 한자로

사남기라고 불렀던 곳으로,

조선 초기부터 군사들의 연무장으로

사용됐고 국사범을 비롯한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특별히 많은 성직자들이 순교한 곳이라서,

서소문 밖 네거리를 ‘평신도들의 순교지

’라고 한다면 이곳은 ‘사제들의 순교지’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 순교의 피가 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치명한 중국인 복자 주문모 야고보

신부부터입니다.

주 신부가 입국한지 6년만인 1801년

신유박해 때 주신부 때문에 많은

희생자가 생기자 주 신부는

자진해서 의금부로 나섰고

새남터에서 순교했습니다.

 1839년의 기해박해 때에는

조선 제2대 교구장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 범 주교와 성 베드로

모방 나 신부,

성 야고보 샤스탕 정 신부가,

 7년 뒤인 1846년 병오박해에는

한국 최초의 방인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기해일기’를

작성한 현석문 가롤로가 이곳에서

참수되었습니다.

1866년의 병인박해 때에는

베르뇌 주교, 브르트니에르,

볼리외, 도리, 푸르티에,

프티니콜라 신부 등 6명의 사제들과

우세영, 정의배

두 평신도가 순교했습니다.
새남터가 다른 성지와 다른 점은

사제들의 순교지라는 것이며,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성인이

 군문효수형을 당한 바로 그 장소라는

 의미에서 한국 천주교회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입니다.
미사는 본당 미사로 봉헌됩니다.

주소는 서울시 용산구

이촌로 80-8이고,

전화는 02-716-1791입니다.

 

 

 

 

 

 

 

서울대교구 새남터 순교성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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