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1.0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05 조회수1,961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11월 5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제1독서 필리 2,1-4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눈다면,

2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3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4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복음 루카 14,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12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어떤 분이 제게 묻습니다.
“신부님, 하는 일도 많은데

어떻게 개들까지 키우십니까?

힘들지 않으세요?”
바쁘게 지내는 저를 보면서

개들까지 돌보는데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이었지요.

물론 정신없이 바쁠 때에는

때로는 짐처럼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키우는 것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삶 안에서

또 다른 기쁨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키우는 개들은

시각장애인 안내 견으로

유명한 종입니다.

러나 이 개들이 제게 물질적인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사료나 간식 값,

그리고 약값 등으로 물질적인

손해를 가져다줍니다.

 또한 안내 견답게 산책할 때

저를 안전한 길로

안내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훈련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어디로 튀어나갈지 몰라서

 오히려 제가 줄을 묶어서

 길을 안내해줍니다.

제가 필요한 물건을 저 대신

사오는 심부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써야 하는 글들을

대신 써주지도 못합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이 개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제게

큰 즐거움을 많이 주기 때문입니다.

같이 뛰어놀면 기분이 얼마나

좋아지는지 모릅니다.

제게 몸을 기대며 어리광을 부리고,

벌러덩 누워서 자기 배를

문질러달라고 할 때에는

큰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꼬리가 떨어질 듯이 신나게

흔들면서 저를 쫓는 모습에

어떻게 기분이 안 좋아지겠습니까?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내가 보살펴주어야 할 대상이고,

경제적인 손해도 많이 끼치는

개들이지만 잠깐 잠깐 웃음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함께 합니다.
단 하나만으로도 충분한데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들이 만나는 사람들도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만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우리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식사를 베풀 때

보답할 수 없는 사람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서 받을 수 없는 보답은

 나중에 하느님으로부터 보답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시지요.

그런데 그 보답은 정말로

나중에만 받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사랑의 실천을

하게 되면 그 자체로 행복해집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만족할

만한 것인데도, 세상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자신의

이득만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여주신

사랑을 묵상해보십시오.

하느님께서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취해서 우리와 똑같은

 위치로 내려오셨지요.

또한 이 세상에서 다스리고

이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패배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당신의 사랑,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도 제외시키지 않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내가 이만큼 주었으니,

이만큼 받아야 한다.'는

합리성을 따져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처럼,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이만큼을 주어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어제 순례오신 분들과 함께....

99 옛 용산신학교 성당.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는

 1855년 충청도 배론에 세워진

 ‘성 요셉신학당’에서

 그 기원을 찾습니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로

배론신학당은 폐교되었고,

 신앙의 자유가 확보됨에 따라

1882년 21명을 페낭 신학교에

유학생으로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885년 충청 여수 강천면

범골(부엉골)에 예수 성심신학교가

문을 열었지만,

1887년에 바로 이곳

서울 용산으로 이전했습니다.

 1892년에는 신학교 교사를

신축했고, 성당은 1902년에

신학교 부속성당으로

축성되었습니다.
옛 용산신학교 성당인

성심 성당은 조적조 양식으로

 명동 주교좌성당과 중림동

약현 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가 설계한

신학교 성당입니다.

일반 교구 성당과는 달리

평면 형식을 가진 이 성당은

지형의 특성을 잘 이용하여

지은 아담한 성당입니다.
이 성당은 많은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치되었던 곳입니다.

1902~1958년까지 이 성당에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모셨다가 가톨릭 신학대학

이전과 함께 혜화동 신학대학으로

모셔 갔으며,

또한 조선 초대 교구장이었던

소 브뤼기에르 주교부터 제8대

교구장이자 이 성당 봉헌식을

집전한 뮈텔 주교에 이르기까지

역대 조선 교구장 주교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었던 곳입니다.
미사는 월, 수, 금

오전 6시 30분에 봉헌됩니다.

주소는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9길이고,

전화는 02-701-5501입니다.

 

 

 

 

 

 

서울 대교구 옛 용산신학교 성당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