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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05♣보답..(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05 조회수1,955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8년11월5일 월요일 복음묵상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루카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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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답을 기대하는 심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어쩌면 보답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우리의 마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우리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세상 논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생겨난 미성숙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도움을 청하는 이의 다급함을 보고 고민을 하다가 도왔다면,

사실 거기에는 너무도 인간적인 갈등이 숨겨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세상의 논리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 짧은 시간에도 계산을 하게 된다.
때로는 못 본척하거나 마다하면서 합리화도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서글프고 초라한 일이다.

복음적인 행동은 도움을 청하는 이에게 일단 지체 없이 도움을 주는 것이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를 두고 무슨 계산이 필요한가?

가끔 아름다운 기사가 나온다.
달려오는 열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로에 떨어진 이를 구해냈다는 이야기,

혹은 떨어진 이를 구해내고 자신은 사고를 피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모든 긴박한 상황에는 늘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좋아지거나 나빠질 가능성.
하지만 가능성을 따지는 것보다 옳고 틀림을 따지라는 것이 복음의 가르침이다.

보답은 나중의 이야기다.
순수한 사랑이나 마음은 당장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손을 내민다.
옳다고 믿는 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 대가나 보답을 의식하는 행동이라면 우리의 삶이 너무 치사해 보이지 않는가?
사실 우리는 옳은 일을 하는 순간 하느님께 보람이라는 그 어떤 보답보다 훌륭한 보답을 받게 되어있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나중에 상대가 보답을 할지, 아니면 그렇지 않을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상대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인지, 그렇지 못한 사람인지는 그 사람의 문제다.
물론, 좋은 일을 하고 반응이 안 좋을 때,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할 때 서운한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단계는 넘어서야 한다.
베풀고자 한다면 그냥 베풀면 된다.
사랑을 한다면 그냥 사랑이 하자고 하는 대로 하면 된다.
오히려 베풀 수 있는 마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한다.

모든 것이 계산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조금은 어수룩해 보여도, 최소한 좋은 마음, 좋은 생각에는 계산을 하지 않는 우리이기를 바란다. (2013)

 

이세사키 가톨릭 천주교회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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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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