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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1.0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07 조회수2,337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8년 11월 7일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제1독서 필리 2,12-18

12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늘 순종하였습니다.

내가 함께 있을 때만이 아니라

지금처럼 떨어져 있을 때에는

더욱더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13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14 무슨 일이든 투덜거리거나

따지지 말고 하십시오.

15 그리하여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 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
16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

그러면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거나

헛되이 애쓴 것이 되지 않아,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7 내가 설령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가 되어 여러분이 봉헌하는

 믿음의 제물 위에 부어진다 하여도,

나는 기뻐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18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기뻐하십시오.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복음 루카 14,25-33

그때에 2

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자영업의 생존 확률은 10%에

불과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10명이 창업을 하면 9명은

망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실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유롭다’는

이유로 자영업을 시작했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사장이니까 자신이 자유롭게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유롭다보니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 관리가 철저한

10%만이 성공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실패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에게 문제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로 외부의 이유를 말하곤 하지요.

운이 없어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서,

부모형제가 밀어주지 않아서,

때가 좋지 않아서... 등등의

외부 이유를 제시합니다.

하지만 실패의 일등공신은

스스로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말이지요.
사업에서만 자기 관리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 삶 전체를 성공의 삶으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철저한 자기 관리입니다.

 특히 신앙은 더욱 더 자기 관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혹시 남이 대신 신앙생활을

해주는 경우가 있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주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이런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본당신부님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신앙생활을

쉬고 있다는 분,

도저히 신자 같지 않은 사람이

성당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고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분,

지금 너무나 바빠서 나중에

 한가할 때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분,

자기는 지금 신앙생활을

쉬고 있지만 가족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 등등.... 남이

나의 신앙을 대신할 수 있다고

착각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신앙생활을 쉬게 만들고,

걸림돌이 되는 십자가가

참으로 많습니다.

래서 그 십자가를

놓아버리겠다고

한다면 주님을 제대로 따를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남이

내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 내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누구 탓을

해서도 안 되고, 세상의 일로

인해서 할 수 없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다른 이가 대신 들어주는

십자가가 아닌 내가 짊어지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꿋꿋하게

신앙생활에 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나는 너무나도

멀리서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나 봅니다.

행복은 마치 안경과 같습니다.

나는 안경을 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안경은

나의 코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게도 가까이!

(쿠르트 호크



낙엽과 인천 답동성당.

101 관덕정

1886년 한불 조약을 계기로

조선에서는 공식적인 박해가

끝났음에도 지방에서는 부패한

관리와 완고한 유생들과

천주교인들과의 충돌이 결국에는

박해라는 양상으로 바뀌었는데,

그중 하나가 1901년에 발생한

제주 신축교안(이재수의 난)입니다.
지방 관리와 기득권을 주장하는

토호 세력 등의 결탁으로 유도된

 이 사건은 중앙 정부의 새로운

조세 정책에 불만을 가진 백성들의

민란으로 출발했으나,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민란군은

공격 대상을 천주교로 돌렸습니다.

프랑스 신부를 쫓아내고 한반도를

배타적으로 독점하려던 일본의 음모,

축첩과 인습에 젖은 토호세력,

토착민의 문화를 무시하고

신당은 파괴되고, 신목을 베어버린

일부 신자들의 무리한 행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대규모

천주교 박해로 이어진 것입니다.
관덕정은 본디 조선 세종 때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군사들의 연무장에

세운 정자였는데,

제주 신축교안 때 많은 신자들이

이곳 관덕장에서 민란군에게

모진 매를 맞고 처형당했습니다.

교우들의 시신은 별도봉 기슭에

가매장되었다가 1903년

조정으로부터 황사평을

양도받아 이장했습니다.
제주교구는 2003년 11월 7일,

‘1901년 제주항쟁기념사업회’와

 함께 화해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곧, 교회는 과거 전통 사회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선교 활동을

 펼쳤던 점들을 인정하고,

제주도 민중들도 봉기 과정에서

무고한 천주교인들이 희생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과거사에 대한 일방적 시각을

 버리고 화해와 화합의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주소는 제주도 제주시

관덕로 19이고,

관할은 중앙 주교좌 성당으로

전화는 064-753-2271입니다.


 

 

 



제주교구 중앙성당과 관덕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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