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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나는 부자인가?)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08 조회수2,098 추천수2 반대(0) 신고

 



나는 부자인가?

+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얘기가 나옵니다.

적어도 제가 세 번은 강론했을 거예요.

지난 821일 평일 복음도 이거였어요.

마태오, 마르코 ,루카 세 공관복음에

부자와 낙타이야기가 모두 다 나와요.

예수님도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방법을 아셨기에

이 이야기를 하셨을 겁니다.

말씀드렸듯이 방법은 이렇습니다.

일단 낙타를 죽여서 곱게 태워서

재로 만들어서 바늘구멍에 솔솔 뿌린다.

어찌 보면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모르지만

깊이 묵상하면 많은 얘기가 들어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일단

나를 태우는 작업에서 시작이 됩니다.

성령의 불이 내 안에 들어와서 욕심을

태우고 교만을 태우고 허영심을 태우고

사치스러움을 태우는 작업으로부터

천국 가는 첫 발걸음이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루가 되어야 됩니다.

죽고 태워져서 가루로 만드는 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필수조건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세 복음서에서 아주 강하게

강조하십니다.

죽어 태워져서 가루로 변해야 된다.

명동성당 앞에 가면 뇌성마비로

구걸을 하는 성 모세라는

형제분이 있습니다.

아주 심한 뇌성마비에요.

그분은 명동성당에서

매일 미사는 드리는데,

그 많은 미사를 다 드려요.

처음 명당성당에 오는

신부님들은 그분께

성체 드리는 것이 제일 힘든 것에요.

계속 몸을 움직이니 조심해야 하죠.

그런데 그분이 하루 종일 한푼 두푼

얻은 돈으로 뭘 하는 줄 압니까?

심장병 어린이 재단에 기부를 해요.

오로지 본인이 쓰는 것은 여관비

2천 원과 하루 한 끼 먹는 데 2천 원.

4천원을 제외하고 다 심장병

어린이 재단에 기부를 해요.

우리 주변에 보면 나보다 훨씬 가진 것이

없는데도 정말 아무 것도 없는데도,

세상과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는 온갖

계명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하십니다.

뭡니까?

네가 가진 재산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고 난 다음에

나를 따라 와라.

그 부자는 너무너무 슬펐어요.

? 재산이 많았거든요.

예수님도 따르고 싶고,

제자도 되고 싶기는 했지만

그 재산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속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은

네가 율법을 어릴 때부터

잘 지킨 것은 알아.

그러나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어.

너는 물질의 축복을

하느님한테 받았는데,

이웃을 위해서 써 본 적이 없잖아?

나를 따르라면 네가 가진 것

다 포기하고 따라라.’

다시 말하면 무소유의 삶으로

나를 따르라고 얘기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루가복음

191~10절에 예수님과

자캐오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캐오는 세리,

세금을 거둬들이는 징수원이죠.

로마인에게 빌붙어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다고 늘 암살단의

중요한 목표가 됐었어요.

자캐오는 그 세리 가운데서도

세리장이었어요.

다시 말하면 재산은 너무너무 많아요.

온 몸을 비단으로 칭칭 감고 살았지만

가슴에는 늘 구멍이 뻥 뚫려있었어요.

찬바람이 불어. 친구가 없어요.

길에 가면 같은 동족들이 손가락질해요.

물질은 충분했지만 기쁨과 평화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죄인을 사랑한다는 분이

자캐오가 사는 동네로 온다는 얘기를 듣죠.

그는 예수님을 만나러 나갑니다.

쉽게 만날 수 있었어요?

사방에 인산인해에 게다가 키는 작았어요.

사람들은 비단을 칭칭 감은 자캐오에게

지나가는 길을 내주긴 커녕 오히려 막았죠.

예수님께 다가갈 수가 없었어요.

그러자 자캐오가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이 지나가실 길을 앞질러 가서

무화가 나무 위에 올라가요.

세리장이면 기관장이에요.

여러분 비단 입고 미끄러워 나무위로

올라갈 수 있어요? 다 벗어버려요.

자캐오는 예수님만 만날 수 있다면

이런 비단 옷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죠.

그 광경을 상상해보세요.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지나가십니다.

그러다 예수님과 나무에 매달려 있는

자캐오와 눈이 마주칩니다.

예수님이 자캐오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그냥 어이! 내려와가 아니라

자캐오야!‘

그 순간 자캐오는 몇 만 볼트의

전기충격을 받습니다.

저분이 어떻게 나를 아시고

나의 이름을 부르시지?

그리고 이름만 부른 것이 아니라.

내려 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겠다.’

더군다나 집에까지 오신대요!

죄인의 집이라고 유대인들은

돌을 던지며 멸시를 받던 집에

예수님이 오신대요.

자캐오는 앞장을 서고

예수님은 뒤를 따릅니다.

예수님은 그 으리으리한 집에 가셨어도

바로 구원선포를 하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자캐오가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제가 남을 속여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을 갚아주겠습니다.’ 합니다.

한마디로 모든 재산을 포기하겠다는

청빈서약이요 포기선언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야 비로서 예수님은

오늘 이집에 구원이 내리리라!’ 하십니다.

예수님 사랑한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있고,

이웃형제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말은

돈이 안 들기 때문에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것을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내어줄 수 있는가?

명동 성당 앞의 모세라는 형제가

하루 종일 구걸한 것을

심장병어린이를 위해 한평생 봉헌하고

산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습니까?

양심의 가책을 느끼셨습니까?

아니면 나와는 상관없는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나누고 또 나누어져

가루가 되어야만 바늘귀를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가루가 되지 않고 어찌 천국을

들어갈 수 있겠는가?

그 바늘귀를 빠져나갈 때 비로소

우리 눈앞에는 천국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세례 받았다고

당연히 가는 것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부자는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부자이십니까?

이 질문에 누구나 자신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누구도 자신이 부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결국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재벌그룹의 회장도 자신은

부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누가 부자입니까?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내가 중고차를 몰 때

중고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보다 부자입니다.

내가 중고바이크를 탈 때

중고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보다 부자입니다.

그것마저 없어 걷는 이가 있다면,

중고자전거 타는 사람은

걷는 사람보다 부자입니다.

내가 걷고 있을 때 휠체어나

목발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보다 훨씬 더 부자입니다.

성서에서 나오는 부자의 개념은

통장의 잔고와 부동산이

얼마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아까 명동성당의

모세씨 보다는 확실히 부자죠?

욕심이 자꾸 생길 때 꽃동네에 가서

일주일만 봉사하고 오십시오.

내가 제일 부자였구나!

불평불만으로 살아갈 때 꽃동네에

가서 며칠만 봉사해보십시오.

어디서 불만이 나옵니까?

내가 제일 많이 가지고 있구나!

예수님이 어부를 부른 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어부들은

갖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갖은 것이 없어 포기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겁니다.

갈릴리 호수는 자기 것이 아닙니다.

농부들을 부르면 땅도 팔아야하고 하면서

처분한 후 가겠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어부들은 몸뚱이와 그물뿐,

갈릴레아 호수는 자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분명히 포기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초에 5000명 정도가

굶어 죽어간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세상에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진가가 안 내놓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웃을 향한 기도는 반드시

물질적인 자선행위가 따라야 합니다.

내어줄 때는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에게 되돌려 드리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봉헌해야합니다.

어느 교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남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필요 이상으로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의 것을

훔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볼펜이 하나도 없는데,

한 자루면 충분한데

나는 5자루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너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을 훔친 것이다.

무서운 말입니다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니

가진 것을 세상과 이웃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천국의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부자도 태워서 가루가 되면

천국에 갈 수 있고,

가난한 이도 교만하게 살면

지옥에 간다고 하는 것을

명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모든 부자가 다

지옥에 가는 것 아닙니다.

가난하다하고도 모두 천국이

보장되어있는 것 아닙니다.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봉헌하는

그런 착한 부자도 있고,

자기의 가난을 원망과 저주만하고

개선할 뜻 없이 불평불만만

가지고 사는 가난한 이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먼저 죽습니다.

그다음 성령의 불로 태웁니다.

그리고 가루가 되어야합니다,

다음 깔때기인 교회를

벗어나면 안 됩니다.

또 깔때기 구멍으로 겸손하게

들어가야만 아래 것부터

살살 빠져나갈 것입니다.

교회공동체는 죽으려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이지,

살려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가 아닐 겁니다.

오늘 미사에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오늘 말씀을 통해 오신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죽기를 각오하고,

불에 태워지길 각오하고,

부서지기를 각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합시다,

2018년 연중 제 28주일(10/13)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photo by - 느티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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