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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루카16,9ㄴ~15)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10 조회수1,597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복음(루카16,9ㄴ~15)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9)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자구대로 들으면 당황된다. 선하시고 공의로우신 주님께서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만들어라고  하시니 말이다. 윤리 신학의 기초와 원칙은 목적이 선하면 수단 방법도 선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절은 성경과 양심에 근거한 이런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이 구절의 앞에 나오는 약은 집사(청지기)의 비유 말씀을 잘 알아 들어야 한다.   

 

주인의 재산을 충성과 성실, 책임감과 주인의식으로 관리해야 하는 집사가 주인 모르게 재산을 불의하게 탕진한 것이 드러나 해고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을 때, 그는 또 한번 주인의 채무자의 빚을 자기 마음대로 탕감해 주면서 해고당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자신의 앞날을 준비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불의한 약은 집사를 칭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세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재를 가끔 이용해서 당신의 메세지를 전하신다.

그가 저지른 불의와 불의한 방법에 촛점이 있는 게 아니고, 해고 이후의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를 제빠르게 준비하는 그의 민첩성을 본받으라는 데에 비유의 촛점과 핵심이 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느님 나라는 영원한 생명(복락)과 영원한 멸망이 달려 있는 그야말로 정말로 심각한 구원의 문제인데, 이스라엘은 너무나 이 문제를 우습게 취급하고 무시하면서 자기 식의 율법적 종교 생활을 하면서 오신 메시아를 몰라 뵙고, 이 세상과 돈과 육의 문제에 매몰되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무관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식으로 살아간다면, 불보듯 뻔한 그때 그 시간이 반드시 올 때 주님 대전에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때 그 시간은 개인적 죽음으로도 언제 올 지 모르는 것이고,  또한 시체가 있는 곳에 솔개가 달라들듯 필연적으로 오는 종말의 심판으로도 점점 임박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관이신 주님 대전에 회개하지 않고 애써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주님께서 안 계신 것처럼 살면서 무사 안일과 불신앙적 완고함과 무딘 태도를 끝내 고수해서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손해인가?하는 것이다. 


'불의한 재물로'에서 '불의한'으로 번역된 원어는 '아디키아스'(adikias)인데, '불의한 재물'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해석을 하고 있다.

하나는 의롭지 못하고 올바르지 못한 재물을 의미하고, 두번째는 꿈란 전통에서  '천국의 보화'(마태6,20)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알아 듣는다. 말하자면, 가치 중립적인 '세속적 재물'이라는 뜻이다.

이 세상 속에서만 활용 가능한, 효용 가치의 한계적 속성(1티모6,17)을 나타내는 재물이란 의미이다.

 

우리는 바로 이 두번째의 의미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일때 말씀을 해석하는 데 의문이 없어진다.

세속의 사람들이 자신의 출세와 명성과 지위와 안정을 위해 재물을 가지고 인맥을 넓혀가듯이, 그런 열정과 그런 민첩성과 그런 지혜로움으로 하느님 나라와 영생과 영원한 복락을 추구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한17,3)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여기서 '안다' 단어인 '기노스코"(ginosko; I know)는 단순한 지성적 인식이 아니라 안 만큼 자유 의지로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도 사도 바오로처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는(필리3,8ㄱ) 태도를 지닐때, 예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주님의 일이 나의 일이 되어 주님께서 나와 동행하시며 나를 통해 일하시고, 나도 주님의 일에 충성을 다해 협력하는 친교와 일치를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하여 내가 숨쉬는 이 공기처럼 살아계시는 주님을 이 땅에서부터 성령 안에서 인격적으로 체험하며, 내세의 천국을 보장받고 구원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11월 위령성월, 남은 달력 한 장 앞에서 자신의 죽음과 회개의 의미를 담아보는 시간을 갖으면 좋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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