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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서와 믿음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12 조회수1,619 추천수2 반대(0) 신고

용서와 믿음

2018년 11월 12일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독서 티토 1,1-9 ㅣ 복음 루카 17,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예수님께서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자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용서를 말씀하셨는데 믿음을 더해 주십사고 청했을까를 묵상해 봅니다. 용서와 믿음은 어떤 관계이기에 사도들은 믿음을 더해 주십사 청했을까요? 


사실 누군가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니 용서가 안 됩니다. 이러한 우리 자신의 한계를 누구보다도 사도들은 너무도 잘 아셨기에 아마도 주님께 믿음을 더해 주십사 청했으리라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사실 저 자신도 누군가 저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지 못하는 게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어쩌면 용서는 주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 안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은 온전한 믿음은 믿음의 더하고 덜하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이 아무리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 하더라도 그 믿음 그 자체로 온전한 믿음이라는 의미는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는 사도들에게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너희의 지금 믿음만 가지고도 충분히 용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시고 계신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사도들에게는 이미 주님을 향한 믿음이 있으니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라고 명령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과 같이, 지금 현재 사도들이 주님을 믿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니 너희도 용서하겠다고 선포하기만 하면 용서가 될 것이라는 그런 희망의 말씀을 주시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곧 지금 너희들은 나를 믿는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하다고, 그래서 용서가 안 된다고 나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사 청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미 너희가 나를 믿는 믿음의 싹이 텄으니 그 믿음만으로도 충분히 용서할 수 있다. 그러니 그저 용서하겠노라고 선포하여라. 그런 의미는 아닐까 합니다. 그러므로 용서하기 위해서 더 큰 믿음, 더 깊은 믿음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님을 믿는 믿음이 싹트기만 했다고 해도 용서하겠노라고 선포하기만 하면 누구든 용서가 가능함에 대해서 알려주시는 것으로 이 장면으로 다가옵니다.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해서 용서를 못하는 것이 아니고, 용서하겠다는 선포가 없어서 용서를 못하는 것이라는 의미인가 봅니다. 아무튼 주님을 믿겠다고 주님의 품안에 들어온 이는 누구든지 용서할 수 있고, 곧 용서해야 한다는 그런 말씀인가 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용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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