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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배부른 돼지가 모르는 것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24 조회수1,726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8년 나해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배부른 돼지가 모르는 것>

 


 

복음: 루카 20,27-40


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진화론자들은 인간의 행복은 진화론의 목표인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진화론자들의 입장으로 보면 진화는 생존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행복한 감정이 생겼다면 그것도 역시 분명 생존과 관련되어야합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 인간관계를 맺지 않으면 인간으로서의 생존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먹고 마시고 사람을 만나며 자녀를 만들도록 행복이란 느낌이 생겨났다는 주장입니다. 모기가 생존하기 위해 피를 좋아하는 것과 같이, 인간도 생존하기 위해 먹고 마시고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인간의 행복은 모기가 피를 좋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행복은 그저 자신에게 성적인 쾌감을 주는 사람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행복은 배부른 돼지가 되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돼지는 죽음 다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저 현세에서 배부르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내세를 위해 독배를 기꺼이 마신 사람입니다. 배부른 돼지 입장에서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어쩌면 진화론자들 입장에서는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나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불쌍한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더 현세적일수록 덜 내세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없으니 이 세상에서 돈 있고 권력 있고 먹고 마시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먹고 마시고 쾌락을 즐기며 살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삶이 윤리적으로 심판 받는 것을 믿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양심의 가책 없이 먹고 마시기 위해 내세를 믿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지옥은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옥이 있다면 현세에 집중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연옥이 없다고 합니다. 그냥 이 세상에서 잘못하는 것들이 마지막에는 모두 없어지기 때문에 막판에 회개만 하면 되니 적당히 살자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천국에 가면 남녀 구별도 없고 이 세상에서의 관계를 초월하여 천사처럼 산다고도 믿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천국에서도 여성이고 예수님은 영원히 남성입니다. 그리고 성모님은 영원히 예수님의 어머니입니다. 천국에서는 오히려 이 세상에서의 관계가 더 완전해지지 흐리멍덩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의 관계가 그리 오래 지속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그렇게 믿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버린 자들의 자기 합리화를 예수님께서 반박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성전을 돈 버는 수단이나 권력의 수단으로 이용한 이들의 대표주자로 사두가이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의 특징은 내세를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아내를 둘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가 천국에 가면 누구와 혼인하여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으로 내세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사두가이들은 내세가 없으니 현세에서 즐겨야한다는 진화론자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로마와 결탁하여 권력을 쥐고 있었던 약간은 매국노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중요시하는 바리사이들이나 명예나 권력을 중요시하는 사제집단도 현세적인 것에 치중하는 사두가이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 사상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스라엘에 내세 사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지극히 현세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생각처럼 내세가 없거나 심판이 없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들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도 죽었지만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내세에 대한 명확한 믿음을 심어주심으로써 그들이 배부른 돼지로 살아가는 것을 비판하시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이 없다면 우리 믿음은 헛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즐겨야합니다. 하지만 부활신앙이 없다고 하더라도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더 낫습니다. 배부름은 일시적일뿐만 아니라 배고픈 이들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들고 또 배고파질까봐 대부분의 시간을 걱정과 두려움으로 살아야합니다. 죽지 않을 정도만 먹고 이웃의 배를 채워줄 수 있다면 그 이웃이 배고픔을 채우는 것을 보고 나도 기뻐집니다.

 

진화론자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우리 안에는 양심도 있고 사랑을 해야만 행복해지게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심판이 없더라도 자신과 가족들의 배만 채우려다 총 맞아 죽은 카다피와 같은 사람으로 사느니 마더 데레사와 같은 삶을 선택하겠습니다. 평소에 누가 더 행복했는지는 본인들만 알겠지만 내세가 없더라도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프더라도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을 선택해야합니다. 내세가 없더라도 외적인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내적인 평화를 추구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그리고 내세가 있다면 육체를 배불리기 위해 갖은 걱정을 하고 그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두려움 속에 살았던 이들의 걱정과 두려움은 완전하고 영원한 고통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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