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심을 경축하는 날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며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죄목을 얻었다. 예수님 사형을 바라던 유다 지도자들이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했다는 뜻으로 조롱하려고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조롱하고자 붙였던 이 명칭이 진실이 되었다. 온 세상이 그분의 탄생을 원년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임금이 즉위하면 그때부터 햇수를 계산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가 예수님 탄생을 원년으로 해 햇수를 정한다. 이는 은연중 예수님을 세계의 임금으로 믿는 셈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다윗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기대하던 종래의 임금으로서의 메시아가 아니시다. 권력을 장악하여 백성을 누르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마저 희생하여 백성을 섬긴 메시아의 모습을 보이셨다. ‘스스로 낮추심’으로써 높아지신 거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빌라도가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요한 18,36-37 참조)’

인류 역사는 권력을 가지려던 수많은 왕과 권력가가 이룬 흥망성쇠로 채워져 있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몫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수단과 방법이 불의해도 그것을 주도한 인물들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해석되고 평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권력의 희생양이 된 민초들의 삶과 억울하게 당한 소수의 진실은 왜곡되고 억압되며 멸시를 받았다. 교회 역사의 어두운 시기에도 교회 권력에 희생된 이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지구촌에는 여전히 권력의 희생양이 되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꽃피운 나라들에서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인권 의식이 성장하고 있고, 권력의 횡포에 대한 제재와 감독은 물론, 사회 운동에 종사하는 이들과 함께 시민의식도 커 가고 있다.

전례력의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선포하는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세속에서는 실패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2천 년이 지난 오늘 그분의 가르침과 십자가 구원의 의미를 깨달은 신자들의 신앙 고백을 통해 승리하신 왕이 되셨다. 섬김 받지 않고 섬기러 오신 왕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이 믿음을 잃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자. 왕이신 예수님은 시간과 운명의 주인이시다. 시간은 어디로 흐르는지 아무도 모른다. 오직 그분만이 아신다. 우리의 운명도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다. 주님만이 아실 일이기에. 그러기에 기도하며 맡겨야만 할게다. 교회력으로 한 해를 마감하는 오늘, 그분을 시간과 운명의 주인으로 다시 고백하자.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