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과부의 헌금 (루카 21,1-4)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26 조회수1,798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과부의 헌금 (루카 21,1-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4)

 

예루살렘 성전은 이방인의 뜰, 여인의 뜰, 이스라엘의 뜰, 사제들의 뜰 이렇게 네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방인의 뜰성전의 마당으로 예수님께서 성전 정화를 하실 때 장사치들과 환전상들을 몰아내셨던 곳으로 이방인들도 들어올 수 있었던 곳이고,

여인의 뜰성전에 들어가기 전의 홀에 해당하는 곳으로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여인들의 장소이며,

이스라엘의 뜰은 성전 안의 회중석에 해당하는 이스라엘의 남자들만들어갈 수 있는 곳이며, 

사제들의 뜰성전 안의 제단에 해당하는 사제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이들 성전의 네 지역에서 헌금함 바로 여인의 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시다가 갑자기 헌금하는 가난한 과부가 당신의 시야에 들어와 보시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 당시 성전에는 13개의 나팔 모양을 한 헌금함이 있었으며, 각각의  용도와 지향이 그 위에 기록되어 있다.

13개의 헌금함 중에 한 개는 자발적인 기부금을 모으는 헌금함이었다. 아마도 빈곤한 과부는 일반인들을 위한 자발적인 기부금을 모으는 헌금함에 렙톤 두 닢을 넣었다고 본다.

 

여기서 '빈곤한'으로 번역한 '페니크란'(penichran; poor)의 원형 '페니크로스'(penichros)극도로 가난한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이며, 당시 '과부'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경제적 활동이 극히 제한을 받았던 가장 가난한 계층의 사람으로서 늘 구제의 대상이 된 신분이었다.

 

그리고 '두 렙톤'으로 번역된 '렙타 뒤오'(lepta dyo; two mites)에서 '렙톤'유대 화폐의 최소 단위로서 로마 화폐 과드란스의 2분의 1에 해당한다(마르12,42).

한 렙톤당시 노동자들의 하루 품삯이었던 데나리온의 128분의 1에 해당된다.

그리고 당시의 성전 규정상 한 렙톤을 헌금하는 것은 금지되었기에, 두 렙톤은 당시 헌금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액수의 헌금이었다.

 

이것은 여기에 등장하는 빈곤한 과부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적 통찰력으로 두 렙톤이  그 과부의 생활비 전부이며,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음을 아셨다.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 21장 4절에서 그 과부가 가장 많은 헌금을 했다고 판정하신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신다.

예수님께서 판정을 내리는 두 대상의 형편과 관련된 두 단어가 나온다. 

하나는 '풍족한'으로 번역된 '페릿슈온토스'(perisseuontos; abundance; wealth)이고, 다른 하나는 '궁핍한'으로 번역된 '휘스테레마토스'(hysterematos; penuary; poverty)이다.

 

'페릿슈온토스'(perisseuntos)의 원형 '페릿슈오'(perisseuo)'양과 수를 초과하다'(exceed)는 뜻으로 어떤 것이 풍부하여 흘러 넘치는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부자들의 경제적인 상태가 흘러 넘칠 정도로 풍부했다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그들은 이렇게 흘러 넘치는 재물 중에 일부를 하느님께 바쳤다.

 

이것과 대조를 이루는 '궁핍한'으로 번역된 '휘스테레마토스'의 원형 '휘스테레마'(hysterema)'부족', '모자람'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물질이 부족해 기본적인 필요조차 채우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과부의 철저하게 빈곤한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단어이다. 모든 것이 부족한 과부는 너무나 빈곤한 가운데 헌금을 바쳤는데, 그것은 과부의 생활비 전부였다.

 

여기서 '생활비'로 번역된 '비온'(bion)의 원형 '비오스'(bios)'삶', '생명' 자체를 가리키거나, 또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뜻한다.

말하자면 이 과부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물질마저 모두 바쳤고, 이것은 그녀의 생명을 바치는 것과 같음을 가리킨다.

 

이렇게 과부는 양적인 면에서 부자의 헌금에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은 금액을 하느님께 바쳤지만, 그것의 가치는 절대적 양의 개념에 있어서 흘런 넘치는 부자의 헌금보다 더 귀한 것을 바치는 자들의 마음과 태도로 평가되어야 한다.

 

인간의 겉이 아니라 속 마음을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부자한테는 있으나마나한 헌금과, 과부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헌금의 가치를 절대적 양의 개념으로 평가하지 않으시고, 그 바치는 자의 마음을 기준으로 평가하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