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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8년 11월 26일(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26 조회수1,425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8년 11월 26일

[(녹)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말씀의초대

요한 사도는,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 있고,

십사만 사천 명이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본다.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시고,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하신다.

◎제1독서◎

<그들의 이마에는 그리스도와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4,1-3.4ㄴ-5
나 요한이

1 보니 어린양이 시온산 위에

서 계셨습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2 그리고 큰 물소리 같기도 하고

요란한 천둥소리 같기도 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들은 그 목소리는 또 수금을 타며

노래하는 이들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3 그들은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땅으로부터 속량된

십사만 사천 명 말고는
아무도 배울 수 없었습니다.
4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어린양을 위한 맏물로
사람들 가운데에서

속량되었습니다.
5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흠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4(23),1-2.3-4ㄱㄴ.5-6

(◎ 6 참조)
◎ 주님, 이들이

당신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
○ 주님의 것이라네,

온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그분이 물 위에 세우시고,

강 위에 굳히셨네.

◎ 주님, 이들이

당신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
 ○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 주님, 이들이

당신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
 ○ 그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얻으리라.

이들이 야곱이라네.

그분을 찾는 세대,

그분 얼굴을 찾는 세대라네.

◎ 주님, 이들이

당신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

◎복음환호송◎

마태 24,42.44 참조
◎ 알렐루야.
○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

람의 아들이 오리라.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2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묵상◎

어떤 빈곤한 과부가 자신의

생활비 전부인 렙톤 두 닢을

헌금함에 넣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지켜보십니다.

물론 부자들이 넣는 돈과 비교해서

 보잘것없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칭찬을 단순한

금액의 비율로 평가하는 것은

복음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빈곤한 과부가

놓인 현실을 외면해 온 공동체의

임에 대한 비판이 숨겨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고아나 떠돌이와

함께 공동체의 보호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의 대표로 과부가

자주 언급됩니다.

이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부름받은 모든 이의 어느 지체도

그분의 사랑과 자비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나라와 주권을 잃고,

 이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율법의 기본 정신은 사라졌고,

세속적 욕망이 이웃 사랑에 대한

원칙을 넘어서면서 경제적

양극화가 일어나고 빈곤한 이들에

대한 연대감이 사라진 것입니다.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이유는

자신이 얻은 수익이 자신의

노력만이 아닌 하느님의 돌보심과

 이웃의 희생에 따른 것임을

고백하는 순수한 종교적 행위입니다.

물론 그 헌금이 성전을 관리하고

 교회의 사제들의 삶을 위하여

쓰인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원칙은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생활비 전부를 헌금함에 넣은 과부는

 어쩌면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얻은 것은 모두 하느님의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수도 있고,

 하느님께서 채워 주실 것이라는

강한 믿음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약자 보호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유다 사회에 대한

강한 질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오늘날

돈과 권력이 갖는 속성을 꿰뚫어

보시고 제자들에게 교회가

가야 할 길을

새로 보여 주신 것은 아닐까요?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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