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1.3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30 조회수1,759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8년 11월 30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제1독서 로마 10,9-18

형제 여러분,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복음 마태 4,18-22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1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자기 곁에 좋은 사람이

늘 함께 했으면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내게 있어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요?

사랑을 많이 베푸는 사람,

친절한 사람,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 등등...

우리는 좋은 사람의

기준을 세웁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좋은 사람의

조건이 있겠지만,

좋은 사람의 첫째 조건은

내 자신이 좋게 보아준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노래라고 하는 것도

좋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좋은 노래로 알려집니다.

좋은 사진 역시 좋게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좋은 글 역시 좋게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 역시

좋게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자기 곁에 좋은

사람이 많다고 말합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 좋게

봐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좋게 보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내 곁에 좋은 사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좋게

 보아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내 곁에 좋은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부정적인

마음을 접고 대신 긍정의

마음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칭찬과 지지하는 노력을

그리고 인정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먼 훗날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루면 미룰수록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서 외롭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어부인 이들은 호수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주님 부르심에

가족을 뒤로 하고 또한

자기 삶의 터전을 버리고서

곧바로 따라나섭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당연히 예수님을

좋게 봤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간직하고

있었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부르셨다면 그들은 따랐을까요?

그들은 절대로 따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좋게 보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또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은 좋게 보는

 마음은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망설임 없이 모든 것을 버리고서

곧바로 주님을 따랐지요.

주님께 대한 좋은 마음,

그 마음을 간직하고서 곧바로

부르심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혹시 의심과 불신의 마음으로

주님을 좋지 않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사랑을 실천하라는 부르심에

망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가장 좋은 길로

끄신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서

 주님을 좋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의 삶으로 초대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어떠한 망설임 없이

 응답할 수 있습니다.

그 응답은 주님의 참 제자가 되어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받는 시작이 됩니다.

배려하고 사랑하며 살면

누군가의 마음 속 사진이

아름답게 남을 것이다.

(프랑수아 를로르)


서울대교구 노원성당에서

5지구 여성구반장 피정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되는 시간

미국 캔자스대 제프리 홀 교수는

친한 친구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가까운 친구’로 느끼기까지

 200시간 이상이 걸린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지요.

홀 교수는 말합니다.
“친구를 사귀는 건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시간을 들여야 한다.”
지금 내 곁에 친구가 없다는 것은

바로 그만큼 친구가 될 사람에게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이는 주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멀게 느껴지십니까?

그만큼 주님께 시간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 예수님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과 가까워지는 방법,

또한 내 곁에 친구를 만드는 방법.

모두 내가 그들을 향해 들이는

 시간에 따라서 이뤄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제 피정에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