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볼까요] 가톨릭 장례의 올바른 이해 (5) 1. 화장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오랫동안 화장을 금지하던 가톨릭교회는 “장례식은 그리스도인 죽음의 파스카 성격을 더욱 명백히 드러내야 하며, 각 지역의 환경과 전통에, 또한 전례 색상에 관한 것에도, 더 잘 부응하여야 한다”(전례헌장, 81)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존중해 “교회는 죽은 이들의 몸을 땅에 묻는 경건한 관습을 보존하기를 간곡히 권장한다. 그러나 화장을 금지하지 아니한다.”(교회법, 1176조 3항)라며 허용했습니다. 지난날 교회의 가르침대로 매장을 고수하던 한국교회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 교회법을 따르고, 화장이 주된 장법(葬法)으로 바뀐 오늘의 우리 사회현실을 고려해 ‘상장예식’에 화장 예식을 수록했습니다. 2. 화장 예식 ‘상장예식’ 282~302쪽에 있는 대로 화장장에 이르면 화장하더라도 육신의 부활 신앙은 전혀 달라지지 않음을 밝히는 기도를 합니다. 독서를 봉독하고 화답송을 부른 다음 마침 기도로 마무리하며 시신을 사를 때 위령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시신의 뼈를 모으는 습골(拾骨)과 화장한 뼈를 빻는 쇄골(碎骨)을 지켜보는 유가족의 아픔과 슬픔이 지나쳐 부활 신앙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령기도와 장례미사에 있는 “나의 살갗이 뭉크러져 이 살이 질크러진 후에라도 나는 하느님을 뵙고야 말리라.”(욥기 19,23-27)라는 기도를 바침으로써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고 따르는 자세를 드러내야 합니다. 유골을 봉안하기 전에 청원 기도를 바치고 무덤을 축복한 다음 봉안하는 동안에 시편 22(23)편이나 성가를 부릅니다. 3. 산골(散骨) 금지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2016년 교황청이 죽은 이의 매장과 화장된 유골의 보존에 관한 훈령인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하여(Ad resurgendum cum Christo)’를 반포하고, 2017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산골에 관한 질의응답’을 공포했습니다. 교회는 매장을 장려하지만, 육신의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교 교리를 부정하지 않으면 화장도 허락하고, 유골을 묘지나 교회가 지정한 장소에 보존하게 합니다. 죽음으로 영육이 나뉘어도 부활할 때 하느님께서 썩지 않는 생명을 주시고, 영혼과 다시 결합한다는 믿음과 부활할 육신에 대한 존경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골함을 묘지 공간의 수목‧화초‧잔디 등에 묻으면 비석이나 표지를 세우고 고인을 추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목장은 매장의 의미와 고인의 이름을 표시해 추모 장소라는 점과 육신이 부활한다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고백 되어야 합니다. 봉안 기간이 지난 유골은 별도의 안치소를 마련해 매장의 형태로 영구하게 봉안하고 이름을 표기해 추모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4. 우제(虞祭)의 의미와 교회 우제는 시신을 묘소에 두고 돌아온 뒤에 놀란 그의 영혼을 달래는 제사지만, 이별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유족을 안정시키는 기능도 있습니다. ‘상장예식’은 “민족의 문화와 전통에서 어떤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 신중하고 현명하게 검토하고, 유익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적응을 사도좌에 보고하여 동의를 얻은 다음 도입하는…”(장례 예식서, 21)이라고 하는 보편교회의 가르침과 “그리스도교의 토착화를 위해 전통 상제례를 현대에 맞게 그리스도교적 상제례 예식서를 만들 것을 요망한다.”(사목회의 의안 4 전례, 16)라는 한국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유교의 우제를 그리스도의 부활, 성인들의 통공, 희망 등 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해 수록했습니다. 이 예식을 통해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해 기도하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 이별의 아픔을 달래면서 영원한 희망을 북돋아야 합니다. 5. 우제의 시편들 장례를 마치고 집에서 초우(初虞) 예식을 거행하고, 다음 날 초우와 같은 재우(再虞) 예식을 지낸 뒤 미사에 참례해 돌아가신 분과 통공을 다지며, 셋째 날 미사에 참례하고 묘소나 봉안당에서 삼우제(三虞祭)를 지냅니다. 초우 때 바치는 시편 제30(31)편은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이 다가올 어려움에서 보호받기 위해 주님을 향한 한없는 믿음을 나타내는 노래로 주님의 자녀인 우리는 그분 품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릴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삼우 때 바치는 시편 제4편은 난관을 이겨낸 경험에서 생긴 주님께 대한 감사의 노래입니다. 어떤 아픔과 번민에 빠지더라도 주님께서 내 편이 되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으면 모두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런 굳센 믿음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에서 자기를 건져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한 이에게 생기고, 이런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처지든 평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바라고 사랑하던 이가 그분께 돌아갔지만, 주님 품에서 아무 걱정 없이 편히 잠들어 있습니다. 우리도 머지않은 날 주님께 돌아간 이들의 뒤를 따라갈 것이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품에서 다시 만나 영원한 안식을 함께 누릴 것입니다. 6. 탈상(脫喪)과 사십구재(四十九齋) 탈상은 상(喪)을 벗는[脫] 유교 의례로 운명한 지 2년이 되면 대상(大祥)을 거행하고 상복(喪服)을 벗지만, 담제(禫祭)와 길제(吉祭)까지 마쳐야 후손에게 온전한 흠향(歆饗)을 받는 조상신이 됩니다. 이에 비해 사십구재는 죽은 이의 중음신(中陰身)이 바람직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기를 비는 불교 의례입니다. 돌아간 이의 중음신이 좋은 곳에서 다시 나도록 정한 기한 동안 정성을 들이고 경을 읽는 것이므로 유교의 탈상과는 의미와 목적이 전혀 다릅니다. 유교의 탈상이나 불교의 재(齋)로 죽은 이의 상(喪)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이가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유교의 조상신이 되거나 불교의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지 않으므로 탈상을 위한 제사나 새로운 생을 위한 재와 무관합니다. 따라서 의미와 목적이 전혀 다른 교회의 미사로 죽은 이를 위한 탈상이나 사십구재를 대체(代替)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미사를 봉헌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선종한 이들의 영원한 안식과 남은 이들의 구원을 간구합니다. 유교 탈상의 대체가 아니라 효의 발로(發露)로 일정한 기간 삼간다는 의미에서 미사를 봉헌하고자 한다면 선종한 지 50일에 미사를 봉헌하고 위령기도를 바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시대는 파스카 축제를 마무리하는 쉰 번째 날에 ‘종결하다’라는 의미로 제사를 지냈고, 신약시대는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의 새로운 파스카가 완성되고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분이 이승의 나그넷길을 마무리하고 주님 안에 새로 태어난다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미사를 봉헌해야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11월호, 박명진 시몬(서울대교구 연령회 연합회 상장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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