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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2.0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03 조회수1,790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8년 12월 3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

제1독서 이사 2,1-5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복음 마태 8,5-11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먼저 공지사항

한 가지 말씀드립니다.

 제가 오늘부터 베트남으로

성지순례를 다녀옵니다.

 3박 5일의 일정입니다.

이 기간 중에 새벽 묵상 글은

 계속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몰라서

 이렇게 공지합니다.

현지의 인터넷 사정이 나빠서

묵상 글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무튼 베트남 성지순례는

저도 처음 가보는 곳이라

많은 기대를 안고 출발합니다.

성지에 가서 많이 기도하고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의 묵상 글 시작합니다.
창작의 고통에 대해 말하는

 어느 작가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부족함이 너무 많지만

매일 새로운 묵상 글을 쓰는

창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글을 쓰는데 고통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 새벽 묵상 글을

쓸 때에는 어렵고 힘들었지요.

 그러나 묵상 글을 쓴 지 18년째

되고 있는 지금, 고통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글을 쓰는 것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제게 주어진 일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즐거운 것도 일의

개념으로 넘어가면 어느 순간에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냥 원래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어렸을 때, 저는 씻는 것이

제일 싫었습니다.

학교 다녀오면 어머니께서는

곧바로 “손 닦고, 발 닦아라.”

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때마다 어차피 더러워질 것을

왜 씻는지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머리 감는 것, 목욕하는 것도

커다란 고욕이었습니다.

머리 감을 때 비누거품이

눈에 들어가면 얼마나

따가운지 모릅니다.

또한 목욕할 때에 때밀이

수건으로 미는 것은

너무나 아팠습니다.

그래서 씻는 것이

정말로 싫었습니다.
지금 현재 저는 씻는 것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목욕탕을 찾아가서 오랜 시간

머무르기도 합니다.

씻은 뒤의 깨끗함과 상쾌함은

 제게 큰 만족을 가져다줍니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요?

 씻는 것을 반드시 치러야 할 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 자신이

하고 있는 그 모든 것 역시

일이 아닌 그냥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떨까요?

일이 아니라,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주님께 대한 믿음 역시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싶습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십니다.

이 신앙생활이 나의 삶을

 만드는 과정이 아닌 해치워야

하는 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 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에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백인대장의 믿음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철저하게 주도권을

주님께 맡기고 있습니다.
그는 나름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지요.

이 지위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불러서 치료하라고 명령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직접 찾아와

도움을 청했으며,

자신의 종에게 굳이 갈 필요

없음을 고백합니다.

대신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종이 나을 것이라는

이 말은 주님께 주도권을

맡겨드리는 모습입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이 정도는 해줘야한다는

 식으로 주님을 대하게 되면

 결국 주님과의 관계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주님의 뜻을 따르기도

힘들어질 것입니다.
주님께 주도권을 맡기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뀝니다.

가장 큰 잘못은

아무 잘못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토머스 칼라일)


백인대장의 믿음.

어떤 질문을 하십니까?

힘들어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에게 “괜찮아?”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대다수가 간단히 “괜찮아.”

라고 대답합니다.

 이 질문은 상대방에게

긴 대답을 유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렇게 물었다면 어떨까요?
“지금 기분이 어때?”
몇 년 전에 코칭을 공부할 때,

상대방의 짧은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은 나쁜 질문이라고 배웠습니다.

상대방을 제대로 코칭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이해하고 인정하고

 지지하기 위해서는 긴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질문은 대체적으로

짧은 답을 유도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이렇게

대답이 짧냐면서 마치

상대방의 잘못인 양 말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잘못은 나에게서

시작할 때가 더 많습니다.
다른 이들에 대한 이해는

나의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질문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많은 말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질문을 통해

우리는 이웃을 좀 더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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