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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2.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04 조회수1,561 추천수5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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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4일

대림 제1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 11,1-10

그날

1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2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3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4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5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8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1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

복음 루카 10,21-24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해봤자 상처만 받고

얻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내 자신이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착각이고 오류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합니다.

나를 잃어버리면서까지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모든 신경을 쏟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책에서 ‘상처받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습니다.

크게 공감되는 구절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완벽한 대인 관계,

즉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관계를 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들이 왜 저를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충분히 싫어할 수 있습니다.

그냥 좋은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또 그냥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내 자신이 그렇다면

남은 어떨까요?

 남 역시 아무런 이유 없이

 좋은 사람도 또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편이 되어주는

한 사람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럴 수 있다.”면서

쿨 하게 지금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를 반대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만은 분명히

나의 편이 되어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여기에 집중한다면 어떨까요?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면서

기뻐하십니다.

철부지 어린아이와 같은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세상에 알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은 주님 안에서 조금씩

주님의 뜻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바로 주님께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에 주님께서는

감사하며 기뻐하십니다.
우리 역시 많은 나약함과

 부족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세상 안에서

해야 할 일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면서

비웃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주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금 힘차게

일어날 수 있으면서,

주님의 뜻을 세상에

펼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 집중하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모습에 주님께서는

크게 기뻐하며

우리를 받아주실 것입니다.

나는 항상 내가 강해지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길을

 내 밖에서 찾아왔다.

 그러나 그 길은 내 안에 있다.

 항상 거기에 있다.

(안나 프로이트)


베트남 다낭에 도착했습니다.

삶이란...

(‘좋은 글’ 중에서)

금붕어가 작은 어항에서

그럭저럭 살아 갈 수 있는 것은 

 기억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람쥐의 건망증은

더 심하다고 합니다. 

 도토리를 땅속에 묻어두고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싹이 나서

상수리나무 숲을

룬다고 합니다.

잊지 못해서 힘들 때가 있지만,

잊어버림으로 득이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기억해야 할 것들도 많지만,

잊어버려야 할 것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런데 잊어야 할 것을

 잊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전진하는데 방해가 되고

 삶의 에너지를 소비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필에는 지우개가

달려있습니다.

이것은 잘못 썼을 때 지우기

 위함입니다.

또한 지우개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실수투성이의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잘못 쓴 것은

지우개로 지우듯이

 우리 삶에서 잘못된 것들은

지우고 잊어야 합니다.

억울하고 암울한 일들을

잊어버리시길 바랍니다.

지난날의 실수나 실패의 쓴잔,

원한이나 미움,

자신의 약점이나

 신체적 결함은 잊고.......
인생에도 색깔이 있습니다.

온종일 내리던 비가 멎은

다음에 찬란하고 영롱하게

피어오르는 무지개처럼 말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 혼자만의 색깔이 아닌

일곱 색깔의 무지개처럼 사노라면

기쁨과 슬픔, 절망과 환희

그러한 것들을 겪게 마련입니다.
삶이 힘들고 어렵고 두렵다 해서

피해 갈수는 없습니다.

힘든 절망의 순간을

 잘 이겨내고 나면 우리의 존재와

가치는 더욱 성숙해지고

절망의 순간을 잘 대처하고 나면

삶의 지혜와 보람이

한 움큼 쌓이게 됩니다.

 

결국은 주인을 찾아가겠지요?

우리 삶도 결국 주님을 찾아갑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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