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2.0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06 조회수1,826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8년 12월 6일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제1독서 이사 26,1-6

1 그날 유다 땅에서는

이러한 노래가 불리리라.
“우리에게는 견고한 성읍이 있네.

그분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성벽과 보루를 세우셨네.

2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3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4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5 그분께서는 높은 곳의 주민들을

낮추시고 높은 도시를 헐어 버리셨으며

그것을 땅바닥에다 헐어 버리시어

먼지 위로 내던지셨다.

 6 발이 그것을 짓밟는다.

빈곤한 이들의 발이,

힘없는 이들의 발길이

그것을 짓밟는다.”

복음 마태 7,21.24-2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25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종종 상담을

요청해서 만나게 됩니다.

얼마 전, 어떤 어르신께서

상담을 청한다면서

이런 질문을 제게 하십니다.
“신부님, 제가 이번에 병원에서

시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까요?”
의사가 아닌 제가 어떻게 병의

치료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튼 상담을 하게 되면 이런 식으로

제게 답을 요구하실 때가 많습니다.

즉, 지금 당장 문제의 해결을

가져올 수 있는 답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가능할까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만이

가능한 영역이지,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으로서는

 정확한 정답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가장 간단한 요리이고 또 빨리

먹을 수 있는 컵라면도

 아무리 빨리 서둘러도 5분

이상의 시간이 걸립니다.

하물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데 저와의 몇 분간 가졌던

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을까요?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누구나 바꿀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렵고 힘들 때에

주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서 불평불만을

 멈추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시는데,

우리는 원하는 것만 달라고

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보다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지금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셨음을

인정하고 감사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기뻐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지금의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으며,

마지막 순간에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그저 주님만을 부르는 것이

최고의 노력인 것처럼 생각하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이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계속해서 불평불만 속에서

살아가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습이

이러했으면 합니다.
‘너무 적은 불평불만과

너무 많은 노력을 하는 나’
바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입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에서 늦은 때란 없다.

결심의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주님의 뜻에 맞춰 살아가는

굳은 결심과 이에 따른

 실천을 행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오늘의 명언:

절대 후회하지 마라.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


베트남의 라방 성모님.

내 이웃은 동반자? 아니면 경쟁자?

한때 ‘죽음을 정복한 사나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스턴트맨으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세 번이나 떨어져 내렸는데

 그때마다 멀쩡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 역시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은 너무나

허무해보이기도 합니다.

글쎄 뉴욕 시내를 걷다가

누군가 버린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뇌진탕으로 사망한 것입니다.
죽음을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에 아무리 강하다고 하는 사람도

절대로 정복할 수 없는 것이 죽음입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해쳐 나가는 사람 역시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들은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도록 누군가를

보내주셨습니다.

바로 배우자라고,

 가족이라고,

또 친구라고 불리는

내 이웃들입니다.

그런데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생각보다는

나의 걸림돌로 생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이유를 어느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반자가 아닌, 경쟁자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경쟁자로

내 이웃을 받아들이면 절대로

고마운 존재로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협조자, 동반자로서 내 이웃을

 받아들이면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라방 성지에서의 미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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