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께서 길 가시는데 눈먼 이 둘이 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외쳤다. 그분께서 집에 들어가시자 그들이 왔다. 예수님께서 “내가 할 수 있다고 믿느냐?”라고 물으시자, 그들이 “예!”하고 대답했다. 예수님께서 그들 눈에 손대시며 이르셨다. “믿는 대로 되어라.” 그때 그들 눈이 열렸다.(마태 9,27-30 참조)’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이것은 이천 년 전 그 눈먼 이에게만 물어보신 예수님 질문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에게도 물으신다. 여기에 우린 준비된 답을 갖고 있는가? “주님, 제가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들은 확실히 준비된 답을 드렸다. 그래서 그들은 볼 수가 있었고, ‘십자가 삶’을 따르는 행운을 얻었다.

우리가 눈 가졌다고 다 제대로 보는 건 아니다. 영적으로 눈을 뜬 이는 믿음을 통해 모든 것을 새롭게 보면서 새로운 삶을 사는 이다. 반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서도 하느님의 일을 보지 못하는 자도 주위에 흔하다. 현대를 사는 많은 이들은 자신들의 완고한 불신으로 믿음의 세계에 발 담구지 못한다. 영적으로 ‘눈이 먼 자’들이다.

전례력으로 교회의 새해가 시작되었다. 온 세상이 헌 해를 보내면서 오는 새해맞이에 분주하다. 머지않아 징글벨소리가 울릴 것이고 크리스마스트리가 찬란하게 꾸며질게다. 부푼 희망이 이어지는 기간이다. 대림은 ‘오심’에 대한 기다림이다. 우리는 준비된 ‘기다림’을 가졌는지? 간혹 설렘 속에 기다렸다지만 종종 흐지부지 끝나는 게 일쑤다.

판공성사 표를 받으면 초조함이 앞선다. 부활 판공이 엊그제인데 그간 한 번도 고해의 성찰을 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고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너무 조급하게 굴거나 그렇게 강박관념을 가지지 말자. 우리만 그분 기다리는 게 아닌, 그분이 우리를 더 기다리신다. 무엇보다도 그분이 먼저일 게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더 신뢰하리라.

그러니 차분히 묵상하는 시간을 갖자. 그런 다음 그분 기다리시는 고해소 문을 스스로 들어가자. 지금껏 긴 줄 꽁무니에서 여럿이 눈치 보며 떠밀려 들어간 판공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 긴 기다림으로 준비한 성찰의 보따리를 마음껏 풀자. 언제나 준비된 맘으로 기다리시는 그분은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라며 보속을 주시리라.

차분한 기다림 후에 맛보는 큰 기쁨이 안겨온다. 정말 오랜 회개 후의 멋진 판공이다. 성당 안 십자가의 예수님도 바뇌 성모님도 방긋이 웃으신다. ‘미리 크리스마스!’를 외쳐본다. 나중엔 몰라도 지금은 그저 기쁜 맘으로, 미리 크리스마스이다. 오랜 회개 후의 멋진 판공성사, 이날이 진정 미리 크리스마스가 아니고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지극히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이들에게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