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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대림 제2주일 2018년 12월 9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07 조회수1,547 추천수2 반대(0) 신고

 

대림 제2주일 2018129.

루가 3, 1-6.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출현을 알립니다. 루가복음서는 사실(事實)들이 역사적으로 어느 시점에 일어난 일인지를 정확하게 언급합니다로마황제 티베리오 치세 15년이고본시오 빌라도가 로마 총독(總督)으로 유대아를 통치할 때입니다당시 팔레스티나의 영주(領主)들과 대사제(大司祭)들의 이름도 밝힙니다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알릴 때도 당시의 로마제국 황제와 로마총독의 이름을 정확히 언급합니다그리스도신앙은 하나의 신화(神話)에 그 기원(起源)이 있지 않고,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과정(過程)을 거쳐 발생하였다는 것입니다그 신앙은 그 시대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인류역사 안에 그 발생과정이 확인되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서들은 세례자 요한이 요르단 강 부근에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고 말합니다그 시대 팔레스티나에는 여러 형태의 세례 운동들이 있었습니다. 율법과 성전 의례에 대한 유대교 당국의 요구는 엄하였습니다사람이 그 요구들을 온전히 수행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죄인으로 낙인찍히고,  하느님으로부터 버려진 절망감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그 시대의 세례는 흐르는 강물에 사람의 몸을 잠기게 하여 죄를 씻는 의례였습니다그것은 유대교 실세(實勢)인 사제와 율사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민중 안에서 일어난 일종의 신앙(信仰)부흥(復興) 운동이었습니다그것은 사람들을 죄() 의식(意識)에서 해방시키는 의례(儀禮)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사람들 중 한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행한 세례운동은 다른 세례 운동가들의 것과는 달랐습니다다른 세례 운동가들은 단순히 죄를 씻는 의례로 세례를 행하였지만요한은 세례를 주면서 회개, 곧 삶의 전환(轉換)을 요구하였습니다요한의 세례는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일생에 단 한 번 받는 의례였습니다예수님도 제자들을 가르치기 전에 요한의 세례 운동에 가담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그렇지 않았으면,복음서들이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은 사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운동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발족하였습니다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길을 보았습니다.   초기 신앙공동체는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은 사실을 말하면서 세례자 요한을 정확히 자리매김해야 했습니다당시에 요한의 제자들도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그들은 세례를 베푼 요한이 세례를 받은 예수보다 더 훌륭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 신앙공동체는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파견된 요한이라고 자리매김하였습니다오늘 복음은 이사야 예언서(40,3-5)를 인용하여 그 사실을 설명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예수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여준 주님이고요한은 그분의 길을 준비한 인물이라는 해석입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고 말합니다여기서 회개는 어려운 절차가 아닙니다자기 삶을 바꾸겠다는 결심입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이 살던 사람이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아자기 뜻대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회개입니다요한은 세례를 주면서 그 회개의 결심을 사람들에게 요구하였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모세로부터 비롯된 신앙을 왜곡하였습니다율사들은 율법 준수를 강요한 나머지사람들이 율법준수에만 마음을 빼앗기고하느님을 잊어버리게 하였습니다사제들은 성전에 바칠 것만 강조한 나머지사람들이 제물봉헌에만 마음을 쓰게 하고하느님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그러는 와중에 하느님은 율법준수와 제물봉헌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을 죄인으로 판단하고, 그 죄에 대한 대가로 그들에게 벌을 주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준수와 제물봉헌이 있는 것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우리의 삶 안에 살아계시게 하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율법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그 함께 계심을 사는 데에 필요한 생활지침이었습니다제물봉헌은 사람이 노동하여 얻은 것을 하느님 앞에 가져와서 하느님의 시선(視線)이 그 위에 내려오게 하여그분의 시선으로 자기가 얻은 산물(産物)을 보는 상징(象徵)적 의례였습니다인간이 자기가 얻은 것을 자기 한 사람만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그것을 보고 처리하게 하는 상징적 의례였습니다얻은 것이 은혜로우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도 은혜로운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율사와 사제들은 지키고 바칠 것만 강조하다가 율법과 제물봉헌의 참 뜻을 잊어버렸습니다하느님은 사람들을 벌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 시대 이스라엘 안에 발생한 세례 운동은 그런 왜곡된 신앙으로 말미암은 폐해(弊害)에서 벗어나겠다는 민중의 몸부림이었습니다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셨습니다남성 위주의 가부장 사회에서 아버지라는 단어에는 어머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머니가 포함된 아버지는 자녀에게 은혜로운 존재입니다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은혜로우신 하느님의 일을 땅에서 우리가 실천하며 살겠다는 기도입니다은혜로움을 실천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입니다하느님이 자비로우시고사랑하고용서하신다는 말은 그분을 아버지로 부르는 사람도 자비와 사랑과 용서를 실천한다는 말입니다하느님을 어떤 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녀 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의 생명을 이어받아 세상에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은이사야서를 인용하여 말합니다.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하느님을 빙자하여 의인과 죄인을 갈라놓고사람을 차별하던 높은 사람들은 낮아지고, 그 들로부터 무시당하던 죄인들낮은 골짜기는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으로 메워져야 한다는 말입니다모두가 은혜로우신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 은혜로우심을 실천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그것이복음서가 선포하는 구원입니다그리스도신앙인의 삶은 이웃에게 은혜로운 것이 되어야 합니다하느님은 저 멀리 내세(來世)에만 계시지 않습니다우리의 삶이 사람들에게 은혜로울 때하느님은 우리 안에 살아 계십니다.  “섬기는 사람이 되라.”(마르 10,43)는 예수님의 가르침도 이웃에게 은혜로운 사람이 되어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살아계시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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