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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2.1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10 조회수1,391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8년 12월 10일

대림 제2주간 월요일

제1독서 이사 35,1-10

1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2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

레바논의 영광과, 카르멜과

론의 영화가 그곳에 내려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3 너희는 맥 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4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5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6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

7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늪이 되고

 바싹 마른 땅은 샘터가 되며

승냥이들이 살던 곳에는 풀 대신

 갈대와 왕골이 자라리라.

8 그곳에 큰길이 생겨

 ‘거룩한 길’이라

불리리니 부정한 자는

그곳을 지나지 못하리라.

그분께서 그들을 위해 앞장서

가시니 바보들도 길을

잃지 않으리라.

9 거기에는 사자도 없고 맹수도

들어서지 못하리라.

 그런 것들을 볼 수 없으리라.

구원받은 이들만 그곳을 걸어가고

10 주님께서 해방시키신 이들만

그리로 돌아오리라.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니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복음 루카 5,17-26

17 하루는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갈릴래아와 유다의 모든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도 앉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힘으로

병을 고쳐 주기도 하셨다.

18 그때에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들여다 놓으려고 하였다.

19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를 안으로

들일 길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내고, 평상에 누인

 그 환자를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보냈다.

20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21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22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23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24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에 걸린

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25 그러자 그는 그들 앞에서

 즉시 일어나 자기가

누워 있던 것을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26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좋은 직장에 취업이 되면 '

행복할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에

올라가는 것 역시 사람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본인이 원하는 수준까지

오르게 되면 어떨까요?

행복할까요?

행복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행복합니다.

분명히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조건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속적인

조건들은 어느 정도 충족이 된

다음에는 행복의 수준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그 조건들로 인해서

불행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세속적인 조건들은

어느 정도까지의 행복까지밖에

우리를 인도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더 큰 행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후에 필요한 것이 바로 ‘관계’입니다.

 즉, 상호신뢰와 사랑을 주는 관계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행복의 수준이

 더욱 더 커지게 됩니다.
이 관계는 주님 안에서 그리고

 내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실제로 많이 목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느끼고 체험하면서 행복이 커졌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이웃을 향한 봉사와 희생 등으로

드러나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행복한 삶을 얻으신 분들도 정말로 많습니다.

어떤 분과의 만남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납니다.
“신부님, 예전에는 돈 버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며 주님을

 만나면서 돈 버는 것은 아주 자그마한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얻게 되는

 행복이야 말로 진짜 행복이고

너무나 큰 행복입니다.”
관계를 통해 얻게 되는 행복을

가져야 진짜 행복, 큰 행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중풍병자 한 사람이

예수님으로부터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치유의 은총을 받습니다.

여기서 그가 받은 치유의 은총에 대해

깊은 묵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는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병자를 내려 보낸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는 표현을

하신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친구들이 주님과 믿음의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중풍병자 혼자만의 힘으로는

죄의 용서도 그리고 자신이

원했던 치유의 은총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관계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더라도

부족한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다른 누군가의 관계를 통해

 내가 구원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부족한 나의 기도도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주님과의 관계, 또한 이웃과의 관계.

 이러한 관계를 회복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행복,

큰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있을 때,

그 사람을 위해 내 안에서

답을 찾는 게 아니다.

결국 나 자신을 위해,

나 자신과의 관계를 위해

 답을 찾아야 한다.

(장택리)


어제 강의를 다녀온 인천교구의 마전동 성당.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상을 받는 아이들은

상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덕분에

상을 받는 거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너희들도 저 꼴이 된다.”
“젊어서 잘 놀아야 늙어서도 잘 논다.

논다는 것은 자기 할 것을 잘 한다는 말이다.”
경남 양산의 한 중학교 이사장으로 있는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님의 말씀입니다.

이 시대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멘토 중 한 분이시지요.

이분께서는 올해 연세가 84세나 되는데도

작업복 차림으로 교정 청소를

손수 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마음을 울리는 말씀들을

학생들에게 전해주십니다.
채현국 이사장님께서는

“노인은 늙은 결과가 아니다.

 살아온 것의 결과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스스로 평화롭고 행복하기 위한 노력을

삶 안에서 일궈야 함을 늘 강조하십니다.

이 분의 말씀을 하나하나 새겨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슴에 새기게 됩니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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