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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행복의 수준 차이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12 조회수1,870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8년 다해 대림 제2주간 목요일



<행복의 수준 차이>



 

 복음:마태오 11,11-15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한눈에 띄는 외모, 풍기는 자신감! 모델이자 영화배우, 달리기 선수이기도 한 에이미 멀린스(Aimee Mullins)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화려함 뒤엔 남다른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육상선수임에도 두 다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선천적 기형으로 태어난 그녀에게 의사가 말하길 이 아이는 절대 걷지도, 운동도 못 하며 타인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살지 못할 것입니다.” 이 사형선고와 같은 말과 함께 에이미의 두 다리는 절단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의족으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미국대학스포츠연맹 주체 비장애인육상대회에 출전해 1996년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것입니다. 그리고 피플지 선장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에 뽑혔습니다. 사람들이 도대체 어떻게 장애와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 라고 물을 때, 그녀는 장애와 역경이요? 그것은 피하거나 넘어서야 하는 장애물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나의 자아를 깨우고 능력을 북돋는 신의 선물이죠!”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제 생각에 진짜 장애물은 억눌린 마음입니다. 그렇게 희망도 없이 눌려있는 마음 말이죠.”

[출처: 에이미 멀린스, 마이 드림 스토리, 유튜브]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서 장애 때문에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장애가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장애가 있었기에 사람들의 시선을 더 끌 수도 있었고, 자신의 말이 더 진실성 있게 전달될 수 있었으며, 작은 도전도 더 큰 성취로 다가올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당당함은 두 발을 멀쩡히 지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을 넘어섭니다. 모든 정상적인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어도 억눌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지만 그녀는 그것보다 못한 상황에서도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에 그만큼 자존감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배부른 돼지가 더 행복할까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더 행복할까요? 종교에서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선택하라고 가르치지만 사회에서는 아무래도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게 더 나을 것도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일단 돈이 없어 배를 곯는다면 행복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배부른 돼지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라고 하시며, 세례자 요한이 모든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는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이 가장 행복하지 않을 때도 보통 사람들의 행복수준을 넘어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큰 사람은 그만큼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행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가장 작은 사람은 지옥에서 가장 큰 고통을 누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란 하늘나라에서 가장 덜 행복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하늘나라에 오른 사람 중에 가장 덜 행복한 사람도 세례자 요한보다는 행복하다는 말씀이십니다. 이 말씀은 배부른 돼지보다는 아무래도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배부른 돼지는 배만 부르면 더 이상의 행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다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 입장에서는 행복이 꼭 먹는 것만이 다가 아님을 알기에 돼지처럼 배만 채우려는 인간을 불쌍하게 바라볼 것입니다. 물론 돼지도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비웃을 것입니다. 이렇게 바리사이들이 가난해야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정말 가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웃고 그 가르침도 조롱하였습니다. 하지만 분명 행복은 각기 다른 수준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합니다.

 

 

보통사람은 에이미 멀린스나 닉 부이치치 같은 이들이 말하는 행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행복할 조건이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몸이 온전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수준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행복의 수준을 넘어선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느끼는 행복은 먹고 마시는 그런 행복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른 자존감에서 오는 행복감입니다. 이런 의미로 하늘나라의 수준에 있는 사람이 비록 배고픈 소크라테스처럼 덜 행복하더라도 아직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자녀 수준에 오르지 못한 세례자 요한보다는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 길에 들어섰기에 세상 모든 사람들보다는 세례자 요한이 더 행복합니다.

 

하느님 자녀가 되면 이 세상 누구도 부러워하지 못할 행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먼저 내가 어떤 수준의 행복을 추구해야하는 사람인지, 즉 돼지인지 소크라테스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인지 하느님의 자녀인지를 먼저 정해야 어떻게 행복을 채울지가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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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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