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대림 제3주일 / 자비는 결코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 반 영억 신부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15 조회수1,510 추천수4 반대(0) 신고



군중이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루카 3,10-18)

오늘의 묵상
여러분은 오늘 성당에 오시면서 거울을 보고 몸단장을 하고 오셨을 것입니다. 오늘뿐 아니라 수시로 거울을 봅니다. 그리고 무엇이 묻거나 잘못되었으면 바로 고칩니다. 저도 거울을 자주 봅니다. 앞이 훤하잖아요? 흰머리라도 좋다 빠지지만 말아다오! 어느 분이 머리 염색약을 슬며시 가져 다 놓으셨는데 발라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더 빠지잖아요. 지금은 있는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하고 지냅니다. 어찌 되었든 아마 얼굴에 무엇이 묻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다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은 어디에 비춰봅니까? 거울에 비춰보면 보입니까? 우리 영혼의 상태를 거울에 비춰보면 그 상태를 낱낱이 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상태, 영혼의 상태를 비춰보는 거울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우리의 거울입니다.

야고보서 1장21절 이하에 보면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사실 누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에 자기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자신을 비추어 보고서 물러가면, 어떻게 생겼었는지 곧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완전한 법 곧 자유의 법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머물면,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그 실행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나를 비춰보고 잘못되었으면 바로 고쳐야지요. 왜 고치지 않습니까? “저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어서 그 답을 가르쳐 주었는데 왜 그대로 실천하지 않습니까. 그대로 하면 축복이 주어지는데, 행복해 진데 왜 그대로 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느냐 말입니다. 그 사람은 거울을 보고 얼굴에 무엇이 묻은 것을 확인하고도 그냥 다니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 사람은 정말 바보입니다. ‘가진 것을 , 먹을 것을 나누어 주어라’.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어라’ 하는 말씀을 듣고도 왜 그냥 넘어갑니까?

오늘 2독서 말씀입니다.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피4,6-7). 말씀을 들었으면 그대로 행하십시오. 그리하면 반드시 행복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찰떡궁합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남편이 아내에게 “당신은 너무 예뻐!”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말아요!” 하였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옳아! 그러니까 우리는 찰떡 궁합이야! 꼬집어 말하지 않아도 용하게도 알아맞히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주님과 찰떡궁합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매번 지적하고 명하지 않아도 그분 뜻을 먼저 알아듣고 행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들며 무엇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깨우치길 바랍니다.

다니엘 예언자는 임금에게 직언을 했습니다. “저의 조언이 임금님께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의로운 일을 하시어 죄를 벗으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불의를 벗으십시오. 그리하시면 임금님의 번영이 지속될지도 모릅니다”(다니4,24). 그러나 네부카드네자르 왕이 자기 영광을 떨치려고 하다가 소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제 정신을 차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를 높이 찬양했습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진실하고 그 길은 다 공정하니 그분께서는 교만 속에 걷는 자들을 낮추실 수 있는 분이다”(다니4,34). 기억하십시오. 선을 행하면 죄를 벗고 가난한 이를 도우면 허물을 벗습니다. 태평성대를 누립니다.

그리고 의로운 사람으로 기억 됩니다. ‘인정이 많고 동정 어려 남에게 꾸어주며 모든 일을 양심으로 처리하는 사람, 그 사람은 흔들리지 않겠고 영원히 의로운 사람으로 기억되리라’(시편37,25-26). 그러므로 “너희는 그에게 반드시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게 줄 때에 아까워하는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이 일 때문에,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가 하는 모든 일과 너희가 손대는 모든 것에 복을 내리실 것이다”(신명15,10). 

사도 바오로도 말합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7). 암브로오시오 성인은“자선은 자선을 베푸는 사람을 죽음에서 건져내고 암흑에 빠지지 않게 해 줍니다. 누구든지 자선을 베풀면 그 자선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바치는 좋은 예물이 됩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요한 비안네 성인도 “자선을 하면 영벌을 면하게 됩니다. 사랑의 하느님은 적은 것에도 만족하시니 많고 적음을 떠나 할 수 있는 데까지 자선을 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결국 자선은 이웃을 구체적으로 돕는 행위이지만 내 자신의 영생을 보장 받는 것입니다. “자선으로 씨를 뿌릴 때 거기서 거두는 열매로 천국의 곳간이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성 베드로 클리솔로그). 그러므로 이웃의 처지를 헤아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그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 주시고 동시에 영생의 복을 오늘로부터 누리시길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0

오실 구세주를 설교하는 세례자 요한


어느날 놀부 집에 스님께서 시주를 받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코웃음을 치며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눈을 감고 불경을 외었습니다. 네가 나를 외면 해도 나는 너에게 복을 빌어주마 하고 “가나봐라 가나봐라 가나봐라”. 이 소리를 듣고 있던 놀부가 질세라 “주나봐라, 주나봐라. 주나봐라” 하였답니다. 지나가던 부인이 그 모습을 보고 “잘해봐라 잘해봐라 잘해봐라”했습니다. 마침 고승이 지나가게 되었는데 “왠만하면 주지그래. 왠만하면 주지그래. 왠만하면 주지그래” 하였답니다.

                                  ◈  ◈  ◈  ◈  ◈  ◈

“자비는 결코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조용히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하늘에서부터 저 낮은 곳으로 떨어져 내릴 뿐이다. 자비는 두 번 축복을 내린다.

한 번은 자비를 주는 사람에게 또 한 번은 자비를 받는 사람에게 그러나 자비가 정의의 이름으로 둔갑될 때, 세상의 권능이 하느님의 권능처럼 착갈될 때가 있다.

비록 당신이 정의를 갈망할지라도,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 속에서는 아무도 구원을 볼 수 없음을 늘 기억하라. 우리는 자비를 위해 기도해야만 한다. 그리고 자비를 가르치기 위해 자비로운 행동을 보여 줘야만 한다. -섹스피어-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민첩하게, 그리고 후회 없이 주십시오!


[말씀자료:-반영억 신부- 편집:원 근식요아킴]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