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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대림 제3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16 조회수1,697 추천수8 반대(0)

처음으로 손목시계를 가졌던 때는 1977년 중학교 2학년 때입니다. 아버님께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당시에는 손목시계를 가지고 있던 친구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에 시계가 있고, 다니는 곳곳에 시계를 볼 수 있어서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시간의 단위가 무척 느슨했다고 합니다. 초와 분 단위의 시간은 없었다고 합니다. 일출과 일몰이 시간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계절이 시간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시기가 시간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느슨한 만큼 우리의 삶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도시마다, 나라마다 시간이 달랐습니다. 국제적인 표준 시간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통이 발전하고, 산업이 발전하고, 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좀 더 정확한 시간을 알고자 했습니다. 좀 더 정밀한 시간을 알고자 했습니다. 일출과 일몰은 진자시계에 자리를 넘겨주었고, 지금은 원자시계가 시간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원자시계는 50억 년에 1초 정도의 오차가 난다고 합니다. 국제적인 표준 시간도 정해졌고, 우리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시간은 과거의 역사를 아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방사능 동위원소의 반감기를 이용해서 지구의 역사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인류는 시간을 활용하고, 시간을 통제하면서 발전을 이루었지만, 시간에 이끌려서 시간에 종속되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우리는 대림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천 년 전에 구세주로 오셨던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시 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원자시계 단위로 측정하는 정밀하고, 정확한 시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방사능 동위원소의 반감기를 이용해서 시대를 구분하는 시간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 우리는 그 대답을 세례자 요한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군중이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이 대답하였습니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십시오. 세리도 물었습니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은 대답합니다.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십시오. 군사들도 물었습니다.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은 대답합니다.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봉급으로 만족하십시오.” 요한은 기다리는 사람의 태도도 이야기합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습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십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께서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도 겸손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대림 시기를 지내는 신앙인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사람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이나, 직책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강도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쓰러져 신음하는 사람을 못 본 척하고 스쳐 지나간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생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던, 빈자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그 일에 쏟아 넣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주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그러한 증여에 쏟아 넣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한해를 정리하는 12월을 지내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올 한해를 돌아보면서 나는 과연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나의 사랑과 나의 마음을 담았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또한,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이웃과 나누기보다는 소유하려고만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오늘 제2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항상 기뻐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바오로 사도가 그 말을 할 때,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 있었습니다. 감옥이 호텔도 아니고 어디 휴양지도 아닌데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감옥에 있으면서도 항상 기뻐하라고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은 점점 커져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라고 말했던 세례자 요한과 같은 겸손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철저한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많이 소유한 사람이 반드시 많이 나누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일은 작다고 하여 미루지 말고, 악한 일이 비록 작다고 행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선현의 말씀이 귀를 울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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