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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2.1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18 조회수1,740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8년 12월 18일

대림 제3주간 화요일

제1독서 예레 23,5-8

5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6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7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8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복음 마태 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작년부터 저와 함께 갑곶성지에

살고 있는 신부님이 계십니다.

50주년 기념 영성센터장으로

부님이 한 분 오셔서 함께 살고 있지요.

그런데 같이 식사를 하다가 특이한 점을

하나 볼 수 있었습니다.

글쎄 삼겹살을 초고추장에

찍어서 먹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런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이상해 보였습니다.

회를 잘 먹지 못하는 사람이

초고추장 맛으로 먹는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고기를 잘 먹지 못해서

초고추장 맛으로 고기를

먹는 건가 싶었지요.

그러나 이 신부님은

누구보다도 고기를 좋아했고,

 고기의 맛에 대해서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단지 맛의 취향이

다를 분이었습니다.
사실 보통 삼겹살은

새우젓과 함께 또는

기름소금에 찍어서 먹습니다.

하지만 이 기준은

누가 만든 것일까요?

맛이라는 것은 자기만 느끼고

알 수 있는 것인데 이를

보편화 시켜서 제대로 맛을

안다고 또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새우젓과 기름소금에

삼겹살을 먹는 것이나,

초고추장에 찍어서 먹으나

상관이 없습니다.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뿐이고

그저 맛있게만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종종 집단생활을 위해서는

 개별성을 지워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개별의 성격들이 모여서

 창의적인 집단을 만들게 됩니다.

집단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한 개인을 틀렸다라고 판단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섣부른 판단보다는

타인에 대한 공감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전거 페달을 떠올려 보십시오.

내 생각만 옳다며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바로 자전거

페달의 한쪽만 돌리겠다는

모습과 같습니다.

가능할까요? 가능하지 않습니다.

한쪽을 멈추게 되면 자전거는

멈출 수밖에 없고 따라서

 넘어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할 때

함께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도

국 멈추고 넘어집니다.
결혼 전에 아기를 가진 성모님과

파혼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꿈에 나타난 주님의 천사의

말을 듣고서 아내로 맞이한

요셉 성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결혼 전에 아기를 가졌다는 것은

간음했다는 증거였습니다.

 따라서 공동체에 신고를 해서

 공개처형하는 것이 집단의 법칙이었지요.

그러나 요셉 성인은 이 집단의

법칙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뜻을 따르고

 있음을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결과 우리 모두를 구원할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뜻이 함께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닫혀 있는 마음으로는 주님의 뜻이

 이 땅에 펼쳐질 수가 없습니다.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온통

작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다.

(피천득)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내가 있어야 할 자리

아이와 엄마가 함께 있을 때,

엄마는 아이보다 10배 이상의

큰 위로를 받는다고 합니다.

무엇으로 위로를 받는 것일까요?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데 말이지요.
‘그냥 거기에 있어준 것.’
이 사실 만으로도 아이는

엄마에게 많은 위로를 줍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만큼 큰 위로는 없는 것입니다.
아이와 엄마의 관계를 바라보면서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즉, 서로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상대방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 있어야

자리에 없을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상처투성이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요?

관동대학교 교수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왔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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