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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2.1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19 조회수1,511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8년 12월 19일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 판관 13,2-7.24-25

그 무렵

2 초르아 출신으로

 단 씨족에 속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마노아였다.

그의 아내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3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그 여자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보라, 너는 임신할 수 없는

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지만,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4 그러니 앞으로 조심하여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

5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기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
6 그러자 그 여자가

남편에게 가서 말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이 나에게 오셨는데,

그 모습이 하느님 천사의 모습 같아서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묻지도 못하였고,

그분도 당신 이름을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7 그런데 그분이 나에게,

 ‘보라, 너는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4 그 여자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삼손이라 하였다.

아이는 자라나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25 그가 초르아와 에스타올

 사이에 자리 잡은 ‘단의 진영’

 에 있을 때, 주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복음 루카 1,5-25

5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로서

 즈카르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으로서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6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7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8 즈카르야가 자기 조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9 사제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그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기로 결정되었다.

10 그가 분향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다.

11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다.

12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13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15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1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17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18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19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20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21 한편 즈카르야를

기다리던 백성은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하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22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

와서 말도 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어떤 환시를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23 그러다가 봉직 기간이

차자 집으로 돌아갔다.

24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25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시험에서 70점 맞은 자녀에 대해

선생님께서 아이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씀하십니다.

다음 두 가지 경우에서 어떤 말이

어머니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할까요?
첫 번째,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이 부족했던 탓에

70점밖에 못 받았어요.”
두 번째, “아이가 머리는

그다지 좋지 않지만,

부지런히 노력한 덕에

70점이라도 맞았어요.”
똑같은 70점인데 어떤 말을

 어머니가 좋아했을까요?

당연히 첫 번째의 말입니다.

첫 번째의 말은 약간의 노력을 하면

더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두 번째의 말은 아이의

수준은 70점이

최대치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요.

즉,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절망의 말이 아닌 희망을 말을,

부정의 말이 아닌 긍정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현대인들은

절망이나 부정적인 말에서

자유롭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베스트셀러라고 알려진 책들은

어떻게든 사서 읽으려고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고 있고,

 또 어떤 책을 원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주 의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작가의 실제 우울증

경험이 담긴 책으로,

작가와 정신과 의사와의 대화를

옮겨놓은 책이었습니다.

 희망도 보이지 않고

그저 우울증의 경험만 나올 뿐인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공감하니까요.”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너만 그러니?

나도 그래.”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힘들어한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이러한 모습으로 당신을

바라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즈카리야를 보십시오.

그는 천사로부터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를 듣습니다.

이 말을 불가능한 일이라고,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희망을

갖지 않는 모습,

또한 불가능이 없는

 하느님의 일까지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에서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아예 입을 막아버립니다.

하느님의 일이 펼쳐지는 곳에서는

긍정이 넘쳐나고 희망이

가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모습은

어떠한 지를 생각해보십시오.

긍정과 희망이 드러나는 모습으로

하느님의 일을 펼치고 있나요?

인생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단호한 신념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버트런드 러셀)


동창 신부의 인천 가톨릭 대학교 총장

 취임식에 다녀왔습니다.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제 글이 좋기 때문에 좋은 글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글을 읽을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글을 읽을 시간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의 이유를

분명히 찾을 수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지나간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하고 노력한 덕분이 아닐까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많이 이용하십니다.

그런데 이 물건들이 내 앞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았을까요?

그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에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편안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모르는 누군가 덕분에

내 자신이 편안히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감사한 것이 많을수록 행복의

이유도 많아진다고 합니다.

따라서 감사할 것이 없다고

하지 말고 감사할 것을 찾는데

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 무수한 행복들이 내 옆에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2018년 갑곶성지 구유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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