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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2.2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20 조회수1,471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8년 12월 20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이사 7,10-14

그 무렵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복음 루카 1,26-38

26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언젠가 군대의 사병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불러주는 곳이면 무조건 간다는

원칙 아래 강의 요청에 승낙했고

강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강의 시작과

동시에 들은 생각은

 “괜히 왔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고 혼자

낙오자가 되어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씩씩한 군인의 모습은

전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제 강의를 열중해서 듣는 척이라도

하는 이들은 각 잡고 앞에 앉아있는

 이등병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들도

꾸벅꾸벅 졸고 있고,

고참들은 아예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군대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이런 정신교육이

얼마나 싫은 시간이란 것을

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저를 향한

계속된 관심 없음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씩씩해야 하는 군인들이

왜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였을까요?

저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믿음이 있었다면,

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런 태도를 보일 수가 없었겠지요.
주님의 말을

우리는 얼마나 듣고 있을까요?

우리의 주님께 대한 관심과

믿음은 어느 정도일까요?

그냥 억지로 주님의 이름만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또 하나의

실망을 안기고 있는

우리는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님

 잉태소식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잉태소식을 들을 때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을

잘 알고 있었을까요? 몰랐을까요?

만약 하느님을 모르는 상태에서

천사를 만났다면, 깜짝 놀라면서

“귀신이야~~~”하면서

도망가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 도망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하면서 겸손한 자세로

 소명을 받아들이십니다.

하느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가능했던 이유는

평소에 이미 하느님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그래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잘 듣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우리의 주님께 대한 믿음을

다시금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주님을

외면하면서 실망시키는 모습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뜻을

잘 실천하면서 큰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다시 오심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를 보다 더 거룩한 시기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 가까이 가는

노력을 기울여보면 어떨까요?

상대를 바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상대가 나와 닮아갈 수 있도록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군인들 앞에서 강의하는 것이 제일 힘듭니다,

세상을 바꾸는 방법.

“내가 그 사람을 잃은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나를 잃은 것이다.

이토록 좋은 나를

그 사람은 잃은 것이다.

그 사람이 손해를 본 것이다.”
남자 친구로부터 이별의 통보를

 받은 것을 안 친한 친구가

괜찮다는 말에,

위와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사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존재는 이런 마음을

갖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믿고 말할 수 있다면

 이별의 아픔을 금방

극복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

주어와 목적어를 바꿔서

생각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잃은 게 아니라

내가 그를 잃은 것이다.

이토록 좋은 그를

나는 잃은 것이다.

내가 손해를 본 것이다.”
어떨까요? 이별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주어와 목적어만 바꾸면

전혀 다른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며,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그래서 부정적인 마음이

나를 휘감고 있을 때 주어와

목적어를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자존감이 상할 때 역시

어와 목적어를 바꿔 보십시오.
세상이 바뀝니다.

 

성모님의 마음을 담아봅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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