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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미사강론]과달루페의 성모님 미사를 봉헌하다[2018.12. 12.수요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21 조회수1,364 추천수1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s://www.vaticannews.va/en.html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8.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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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81212일 수요일[대림 제2주간 수요일]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이사야서 40,25-31

화답송 : 시편 103(102),1-2.3-4.8 10(◎ 1)

복음 : 마태오 복음 11,28-30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9902&gomonth=2018-12-12&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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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과달루페의 성모님 미사를 봉헌하다.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18-12/pope-francis-mass-our-lady-of-guadalupe.html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요일 저녁에  아메리카의 수호자 과달루페 성모님을 기념하기 위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합니다. 다음은 교황 강론의 잠정 번역문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복음 1, 46-48). 마니피캇 찬가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것을 통해서 마리아님은 첫 번째 복음의 스승” (CELAM, Puebla, 290)이 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우리에게 상기시키시고 주님의 자비를 노래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마리아님은 선교와 희망의 깊은 뜻에 많은 말과 계획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성모님의 방법은 매우 단순합니다. 그분은 걸으셨고 그분은 노래하셨습니다.  

 

마리아님은 걸으셨습니다.

 

이것은 복음 말씀이 천사의 수태고지 후의 그분 모습이 어떠했는지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서둘러서 하지만 근심하지 않으며- 마리아님께서는 엘리사벳의 집을 향해서 그녀의 마지막 임신 3개월동안을 엘리사벳과 동행하기 위해 걸어가셨습니다. 마리아님께서는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없을 때 예수님을 향해서 서둘러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님께서는 세월이 지나 이미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지실 때 십자가의 발 밑에 서있기 위해서 골고타를 향해서 걸었습니다. 어두움과 고통의 문턱에서 마리아님께서는 그것을 피하지도 않으셨고 도망가지고 않으셨고 그분께서는 거기에 있기 위해서 걸으셨습니다.

 

마리아님께서는 후안 디에고와 동행하기 위해서 테페야크로 걸으셨고 그분께서는 계속 걷고 계십니다. 그 때 상본이나 형상을 통해서 초나 메달을 통해서 묵주나 성모송을 통해서 한 집에 들어 가시고 감옥과 병실, 요양원, 학교, 재활 클리닉에 들어가십니다. 이렇게 말씀하러 들어 가십니다. “내가 너의 어머니가 아니냐?”(Nican Mopohua, 119). 마리아님께서는 다른 누구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법을 알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가족의 생활 안에서 편하게 느끼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일으키는 많은 잘못들의 매듭 하나 그리고 또 다른 매듭들을 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마리아님께서는 우리가 폭풍우 속에서 계속해서 서 있으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마리아님의 학교에서 우리는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다다르기 위해 계속 걷는 법을 배웁니다. 딛고 서서 길을 잃었거나 희망을 강탈당한 너무나 많은 삶들의 곁에 서 있으면서 말입니다.

 

마리아님의 학교에서 우리는 마법의 해결책, 즉석 대답 그리고 즉각적인 결과들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도시를 관통하여 걸으라고 배웁니다. 허위의 전진을 환상적으로 약속하는 권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각을 획일화시키는 가식적인 의도로 우리 민족들을 지탱해 온 생명에 꼭 필요한 구조들을 파괴하면서 서서히 문화적인 그리고 가족의 정체성을 빼앗는데만 성공합니다.

 

마리아님의 학교에서 우리는 도시를 걷는 것을 배우고 그 대륙에 존재하는 다문화적 풍요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살찌우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가 우리의 민족들 안에 고동 치는 그 숨은 마음에 귀 기울일 수 있을 때 그리고 타버린 재처럼 보이는 것들 밑에서 연기를 내는 불꽃처럼-하느님의 감각과 그분의 드러나심, 생명의 신성함, 창조에 대한 존경, 연대의 결합, 선한 삶 그 깊은 뜻의 기쁨, 그리고 행복해지는 능력을 지키는 숨은 마음에 귀 기울일 수 있을 때 그리고 무조건 경축할 수 있을 때 이것이 아메리카의 그 뿌리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cf. Encuentro con el Comité Directivo del CELAM, Colombia, 7 septiembre 2017).

 

마리아님은 걸으셨고 마리아님은 노래했습니다.

 

마리아님은 하느님께서 그분의 비천한 종에게 하신 경이로운 일들을 노래하는 사람이 갖는 기쁨을 품고 걸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선한 어머니와 같이 지나가시며 이런 저런 이유로 자신들이 노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한 목소리를 주시면서 노래를 일깨우십니다. 마리아님께서는 요한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요한은 그의 어머니의 태 안에서 뛰놉니다. 마리아님은 엘리사벳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엘리사벳은 축복하기 시작합니다. 늙은 시메온-그리고 그를 예언하게 하고 꿈꾸게 하십니다. 마리아님은 첫 번째 말을 웅얼거리도록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마리아님의 학교에서 우리는 그분의 삶이 주인공이 됨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도록 만드시는 능력으로 특징지어졌다는 것을 배웁니다. 마리아님께서는 용기를 주시고 말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그리고 무엇보다 신앙과 희망으로 담대한 삶을 격려하십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마리아님께서는 주님의 살아 있는 성전을 짓도록 우리를 부르시고 준비하도록 초대하시면서 그분의 권능을 보여 주시는 투명한 주님의 얼굴을 드러내십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후안 디에고에게 하셨던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에게 하셨던 일입니다.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익명성을 없이 하시며 목소리를 주셨고 그들의 얼굴과 이야기가 알려지도록 하셨고 그들을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 구원의 역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중심적인 박수 갈채나 세속적은 존경을 찾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영광은 그분의 자녀들을 창조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마리아님은 각자 다른 이유들과 환경들 때문에 포기와 망각에 빠져 있던 모든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고 고귀하게 만드시려고 애쓰십니다.

 

마리아님의 학교에서 우리는 스스로 소중하거나 중요하다고 느끼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굴욕감을 줄 필요가 없고 학대하거나 경멸하거나 흉내낼 필요가 없는 주인공 되기를 배웁니다. , 안전하고 보호받는다고 느끼기 위해서 신체적이거나 심리적인 폭력이 일어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다정함이나 애정의 징표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그 최고의 얼굴이 섬김이라는 것을 압니다. 마리아님의 학교에서 우리는 자비에 대한 주님 약속의 저항할 수 없는 권능이라는 신성한 사랑의 전지 전능하심으로 그렇게 하면서 쓰러진 모든 이들을 고귀하게 하는 진정한 주인공 되기를 배웁니다.

 

마리아님 안에서 주님께서 가장 크게 소리지르고 거짓말이나 속임수에 의지해서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주인공이 되게 하는 권력과 위협의 힘을 주는 유혹을 잠재우셨습니다. 마리아님과 함께 주님께서는 믿는 이들을 굽어 보십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고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그들이 끊임없이 다시 새로워진 그리고 새로워지게 하는 연대의 힘을 알도록 그리고 연대의 힘을 다시 새롭게 하면서 우리 민족들의 남자와 여자들의 마음 안에서 뛰는 하느님의 맥박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마리아님 복음의 선생님은 걸으셨고 우리의 대륙 위에서 노래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과달루파나(Guadalupana)는 원주민이나 스페인 히스패닉 또는 아프리카계 아메리카인으로서 기억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마리아님은 그저 라틴 아메리카인입니다. 비옥하고 관대한 땅의 어머니입니다. 그 땅 안에서 모든 이들이 어떤 방법 또는 다른 방법으로 하느님 가정의 신성한 성전을 세울 때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아들 딸들이여, 형제 자매들이여, 당신의 어머니 성모님이 그렇게 하셨듯이 두려움 없이 노래하고 걸으십시오.  

 

 

2018 1212 183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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