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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2.2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22 조회수1,514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12월 22일

대림 제3주간 토요일

제1독서 1사무 24-28

그 무렵 사무엘이

 24 젖을 떼자 한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다.

그는 삼 년 된 황소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파와 포도주를

 채운 가죽 부대 하나를 싣고,

실로에 있는 주님의 집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는 아직 나이가 어렸다.

25 사람들은 황소를 잡은 뒤

아이를 엘리에게 데리고 갔다.

26 한나가 엘리에게 말하였다.
“나리! 나리께서

살아 계시는 것이 틀림없듯이,

제가 여기 나리 앞에 서서

주님께 기도하던

바로 그 여자입니다.

27 제가 기도한 것은

이 아이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드린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곳에서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

복음 루카 1,46-56/span>

그때에

46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18세기 초, 영국의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이

세인트 폴 대성당을

 재건할 때의 일입니다.

 그가 평상복을 입고

현장을 돌아보다가

세 명의 석공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첫 번째 석공은

“그저 돌이나 깎고 있습니다.”

라고 말을 합니다.

두 번째 석공은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이 일을 하는 것이지요.”

라고 대답합니다.

그 다음 세 번째 석공에게도

똑같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세 번째 석공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위대한 성당을 짓는데

한 몫을 하고 있지요.”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일을 대하는

태도가 바뀔 것입니다.

그리고 일의 성과도

달라질 것이고,

그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이 사람의 가치도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친구와 함께

미술관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집 안 일로 인해서

마음이 좋지가 않은 것입니다.

과연 미술관에서 그림 구경은

어떠했을까요?

꼭 오고 싶었던 전시회였지만

기쁘지가 않았습니다.

멋진 작품 역시 별로 좋아

보이지 않은 것은 당연했지요.

왜 그랬을까요?

바로 마음가짐 때문입니다.

우울하고 힘든 마음으로 인해서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던 것이지요.

작품이 마음가짐에 따라서

가치가 크게 바뀌고 맙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야 할까요?
미움과 분노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사랑과 평화의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부정적인 마음가짐이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그때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심지어 내 자신까지도

가치를 높이게 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친척 엘리사벳을

 만난 뒤에 하느님 아버지를

찬미하는 노래를 바치십니다.

 이 마니피캇이라고 불리는

성모의 노래를 묵상하면

성모님께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고 계셨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듣는 것부터가

고통의 시작임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고통을 피해야할

고통으로 받아들이시지 않습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바라보려했고

그 사랑의 일에 동참하셨습니다.
성모님의 마음은

오로지 하느님뿐이었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부르실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게 했습니다.

성모님의 가치가 올라가신 것입니다.
누구나 다 고통과 시련의 시간을 겪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과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집니다.

고통과 시련에서 희망을

바라보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사람입니다.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

(나희덕)


세인트 폴 대성당입니다.

어떤 마음가짐이냐가 중요합니다.

핀란드에서 773명에게 감정을

자극하는 영화를 보여주고 난 뒤

 전신 체온을 측정했습니다.

느끼는 감정에 따라 체온이

달라지는 지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몸 전체가 따뜻해지는 감정은

 ‘행복’이었고,

‘우울’의 감정이 찾아올 때는

체온이 낮아졌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실험이었습니다.
몸이 따뜻해야 한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행복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좋은 것을 보고

또 좋은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특강을 하고 온 수원 흥덕성당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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