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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2.2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23 조회수1,325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8년 12월 23일

대림 제4주일

제1독서 미카 5,1-4ㄱ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

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3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4 그리고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제2독서 히브 10,5-10

형제 여러분,

5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복음 루카 1,39-45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제가 졸업했던 초등학교에

한 20년 만에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제서품을 받고 두 번째로

발령을 받았던 곳이 바로

 저의 모교 옆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초등학교 내의

학생 수가 자그마치

5,000명이 넘었습니다.

늘 학생들이 바글바글했던

운동장은 어마어마하게 컸었고,

교실 역시 6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기에도 충분히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학교 정문에 들어선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그 많은 학생들이 뛰놀았던

운동장은 너무나 작았고,

 교실 역시 어떻게 60명 넘는

학생들이 공부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제 자신이 커졌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즉, 아이들의 시선과 어른의

시선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이는 삶의 확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만약 머물러 있는 곳이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제 자신은

 도저히 성장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기준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그 안의 테두리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기준에 맞춰서

살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립니다.

 분명히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더 큰 기쁨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 안에서 하느님

기준에 맞춰서 살아간

사람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성인 성녀들이었지요.

그들은 세상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준을 철저히 따랐습니다.

그 순간에는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저렇게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느냐면서

손가락질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우리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기준을 철저히 따랐던

또 한 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예수님 잉태의 순간부터

세상의 기준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갖게 되면

공개 처형을 당할 수도 있는데,

세상의 기준으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 엘리사벳 성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루카 1,45)
믿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사실 성모님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걱정과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을 상황입니다.

 아직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사실.

그 사실만으로 두려움을

갖기에 충분합니다.

죽음의 순간일수도 있지만,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 성모님.

굳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엘리사벳 성녀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믿음 때문이며,

이 믿음으로 인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혹시 아직도 세상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느님의 기준이 내 안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나중에 꼭 후회한다.


성모님과 엘리사벳의 만남.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사랑’에 대한 글

덜 요구하고 이해하는 것.
비난은 느리고 용서는 빠른 것.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주는 것.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 것.
불평을 떠벌리지 않는 것.
진실한 마음으로 말하는 것.
의심을 멈추는 것.
매일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
사랑받고 싶다고 밝히는 것.
지금이 마지막 기회임을 아는 것.
여러분은 몇 개의

사랑을 실천하고 계십니까?

베트남 다낭의 해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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