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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2.2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26 조회수1,480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8년 12월 26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제1독서 사도 6,8-10; 7,54-59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7,54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복음 마태 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018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가올 내년에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새롭게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문제는 이러한 다짐들이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지요.

결심만 하게 되면 왜 이렇게 뜻밖의

일들이 많이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회사를 마친 저녁 시간에는 무조건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던

형제님이 계십니다.

하루 이틀은 이 다짐을 잘 지켰습니다.

그런데 작심삼일에 해당하는 삼 일째에

뜻밖의 일이 생긴 것입니다.

거래처 회식에 가야만 했습니다.

이 형제님께서는 ‘어쩔 수 없지.’라면서

자신이 세운 결심을 깰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른 형제님께서는 저녁시간에

영어 학원을 다녀서 공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역시 하루 이틀은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삼 일째에 오래된 친구가

만나자는 전화를 한 것입니다.

 ‘어쩔 수 없지.’라면서 이 형제님 역시

 결심을 깨뜨리고 그날

엄청나게 과음을 했습니다.
자신의 결심을 지키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결심이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기업가는 자신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봤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든

자신이 세운 원칙을

지켜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원칙을 지켜나가는 그를

사람들은 믿었고, 사업을 하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도 자신만의

원칙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들은 시간이 나야지만 주님의 뜻을

실행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합니다.

세상의 일이 먼저이고 주님의 일은

나중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주님의 일에 대한 원칙 자체가 없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첫 번째 순교자로

 알려져 있는 성 스테파노 축일을 지냅니다.

그에게는 커다란 원칙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어떤 것보다 나중이

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위협도, 죽음의 공포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스테파노는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굳게 믿고

 따랐기에 구원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 원칙인 주님의 뜻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주님을

따르는데 방해하는 박해가 계속됩니다.

 이 방해에 곧바로 주저앉아 포기하는

이유는 세상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이 기준에 따르려는

욕심과 이기심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준에 집중하고,

 주님께 철저히 의지하고 함께 한다면

그 어떤 유혹도 내게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구원의 영광을 얻게 될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멈추지 않는 이상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자)


돌에 맞아 순교하는 스테파노 성인.

선택과 포기

(‘좋은생각’ 중에서)

미국 하버드대

댄 길버트 교수가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졸업 전에 추억이

될 만한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각자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두 장을

고르게 한 뒤 말했다.

“한 장은 과제로 제출해야 합니다.”
그다음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흘간의 여유를 드립니다.

 선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그룹에겐 “지금 당장

제출할 사진 한 장을 고르세요.

선택하면 바꿀 수 없습니다.”
나흘 뒤, 두 그룹에게 자신이 갖기로

한 사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물었다.

그 결과 두 번째 그룹의 선호도가

훨씬 높았다. 바꿀 기회가 없었던

 학생들이 자신의 사진을 더 좋아한 것.
선택을 바꿀 여지가 없는 학생들은

주어진 결과에 만족했다.

반면 첫 번째 그룹은 과연

좋은 선택을 했는지 얽매여

있느라 만족감이 떨어졌다.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도 말했다.

“인간이 불행해지는 까닭은

선택한 것과 포기한 것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좋은 것이야 있겠지만,

선택에 대한 후회로 마음의 평화를

잃을 만큼 가치 있는 건 없다.”
선택과 포기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인 것

같아서 이곳에 올려봅니다.


성 스테파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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