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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2.2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27 조회수1,630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8년 12월 27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제1독서 1요한 1,1-4

사랑하는 여러분,

1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2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4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복음 요한 20,2-8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2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스스로의 자존감이 떨어지게 되면

지금의 삶에서 충실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존감의 시작은

어디에서 시작할까요?

 바로 비교하지 않는데서

높은 자존감을

 형성할 수 있는 힘이 마련됩니다.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내 자신을 인정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인정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도 틀린 사람이 없고

단지 나와 다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비교하는 우리들입니다.

아내, 남편, 부모, 자녀,

그리고 나의 이웃들과도

얼마나 많은 비교를 하고 있습니까?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남과 비교합니다.

비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다음의 2행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비: 비참해지거나.
교: 교만해지거나.
맞습니다. 비교를 통해서

얻는 것은 비참해지거나

교만해지는 것뿐입니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이

못하다고 판단되면

 비참해지겠지요.

또 내가 더 낫다고 판단되면

교만해질 것입니다.

사실 비교의 대상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과거의 나만의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나와 지금 현재의 나를

비교하면서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겸손을

자주 말씀하셨고 당신 삶을 통해서

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겸손의 삶을 많은

성인 성녀들이 따랐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은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제자로 알려져 있지요.

그가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오늘 복음에서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무덤을 달려갑니다.

런데 요한이 먼저 무덤에 다다르지요.

 하지만 무덤 안에는

먼저 들어가지 않습니다.

예수님 부활의 장면을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욕심도

들 수 있는 순간이었지만,

그보다는 예수님의 선택을 받아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은 베드로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입니다.
베드로와 자신을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선택만을 바라보면서

 겸손의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뜻이었고,

이를 철저히 따랐기에 사랑의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비교는 결코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따라잡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늘 나아가는 것,

 밤이나 낮이나, 동료들과,

모든 인간과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존 버거)


십자가 옆에 있었던 사도 요한.

한 명만 놓으세요.

유람선이 태평양을 지나가다

풍랑을 만나 좌초했습니다.

그때 구조 헬기가 왔을 때,

여자 한 명과 남자 열 명이

사다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 헬기는 딱 열 명까지만

구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래서 기장이 부탁했습니다.
“제발 한 명만 놓으세요.

아니면 우리 모두 죽습니다.

줄을 놓으실 분 손들어 보세요.”
이때 여자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 남편을 위해 희생하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살았는데 이

번 한 번 더 희생 못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제가 놓겠습니다...”
그 말에 감동한 남자들이 박수를

치다가 모두 떨어지고 말았답니다.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우리입니다.

그런데 나 역시도 우리가 함께

 있기에 의미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함께 살아가는데 자신의 희생도

아낌없이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희생을 통해 드러나는 사랑이

세상을 더욱 더 아름답게 합니다.

성탄의 기쁨을 나누고 있나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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