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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종 (로마 1.1, 1.20-23)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28 조회수1,670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

(로마1:1, 20-23)

1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 바오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21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느님으로 찬양하거나 그분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게 되고 우둔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22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 23 그리고 불멸하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인간과 날짐승과 네발짐승과 길짐승 같은 형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오늘은 로마서 11절에 종이라는 단어의 개념에 대해서 20절부터 23절까지의 내용과 연결을 하여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고대 시대 서신 양식은 편지를 보내는 이를 먼저 밝히는 양태였어요. 우리는 맨 마지막에 이름 쓰고 누구누구 올림 이렇게 쓰잖아요 고대 시대는 맨 앞에 편지를 쓰는 사람의 이름을 썼단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자신의 신분과 이름을 먼저 밝히는 거에요.

보시다시피 바울은 자신에 신분을 종이라는 단어로 축약하여 말을 하고 있어요 . 보통 사람이 자신을 소개할때 자신에 배경과 학력 그리고 자신에 자랑거리를 먼저 말하기 마련 아닙니까?

그런데 바울은 그의 모든 배경과 학력과 자랑거리들을 다 무시하고 종이라는 한 단어 종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신분을 표현하고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에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갈라디아서 614절에 나오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라는 그러한 사도의 진심이 묻어나오는 진술이죠

 

모든 인간은 종에 자리에서 벗어나서 종을 부리는 자로 살고 싶어 하죠 그죠? 종되고 싶어하는 사람 계세요 여기...........종을 부리는자 그런 자가 되고 싶어 해요 그게 바로 지배구조 경쟁구조 힘에 원리속을 살아가는 인간의 본성이에요 그런데 바울은 스스로를 종으로 표현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것도 아주 자랑스럽게~~

그렇다면 같은 성정을 지닌 우리 성도들도 자신에 자아 인식을 종으로 해야 마땅하다는 말인데, 도대체 그 종이라는 단어가 축약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이기에 그것이 성도에 신분을 한마디로 축약할 수 있는 것인지, 지금부터 그 종이라는 단어가 축약하고 있는 그 성도의 신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20절 이하의 본문부터 해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려워요 여러분 잘 들으세요 여러분은 자연에 대해서 만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자연, 만물..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단어죠 잘 알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에 표현대로 다시 바꾸어 다시 질문할께요 여러분은 만물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십니까?

지금 읽으신 20절을 잘 보면 만물에는 자연에는 하느님에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 즉 하느님에 영광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라고 진술하고 있죠 그러니까 자연을 안다는 건 하느님에 영광을 안다는 말과 동일한 말이죠 하느님에 영광을 포착하고 감지할 수 있는 자가 자연을 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자연을 알아요? 만물을 아십니까?

그럼에도 21절을 보면요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면서도그러죠 여기서 사람은 성도만을 지칭하는게 아니에요 모든 사람 보편적인 사람을 지칭하는 건데 .... 사람이 하느님을 안다라고 이야기 해요 이건 무슨 말이냐 말이에요 이게,

모든 존재가 하느님을 알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치도 않고 우둔하게 되어 썩어지지 않는 하느님의 영광을 우상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래요 이게 무슨 말일까

그런데 그러한 인간들 사이에서 하느님의 종이라는 자가 나타나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거에요 이 둘에 상관관계를 여러분이 잘 알고 가셔야 되요 오늘.

 

바울에 진술에 의하면 자연에는 만물에는 하느님에 영광이 나타나 있다 그래요 그런데 인간들이 그 자연에 실체, 만물에 실체에 대해 포착을 하지 못하고 그 자연을 오히려 우상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러죠

우리가 그 말씀을 통하여 우선 첫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게 인간은 자연을 온전히 인식하거나 포착할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맞습니까? 그러니까 자연에 나타나 있는 하느님을 포착하지 못하고 썩어지지 않을 하느님의 영광을 썩어질 우상으로 바꾸어 버린거 란 말이에요

그렇게 인간이 포착할 수 없는 모호한 영역을 카오스라 그래요 혼돈 입니다 카오스, 그리고 아주 부분적으로 인간에게 포착이 되어서..여러분 자연이 뭔지는 각자 정의를 내리고 있잖아요 그건 아주 일부란 말이에요

이 카오스라는 이 혼돈이라는 것에 아주 일부 이것이 인간에게 포착 되어서 지금 자연이라고 각자에게 정의가 되어 있잖아요 고걸 코스모스라고 하는 거에요 질서 ,코스모스 우주.

그러니까 카오스라는 진짜 자연이 있는데 그건 자연에 실체가 카오스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 제한된 인간의 이성으로 그걸 다 못알아 먹는다라는 의미에서 카오스란 말이에요

그런데 거기에서 아주 작은 것들 일부분을 인간들이 요렇게 끄집어 내어 형식화 하여 합리화 하여 요게 자연이다라고 정의해 놓은 고걸 질서 코스모스라고 한단 말이에요 우주라고 하죠 그걸 코스모스 . 인간에게 포착된 자연이라는 건 사실 자연에 실체가 아니라 자연에 일부분이 인간에 의해서 형식화되고 합리화된 것일 뿐이에요 그런데 인간은 진짜 자연 안에서 그 카오스인 자연 안에서 그 자연에 장악되어 살고 있죠

쉬운 말로 인간은 하느님에 영광안에서 하느님에 영광에 장악되어 살고 있다라는 말이에요 자연 그 만물 안에 하느님의 영광이 들어나 있다라고 하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지금 자연과 하느님을 동일시하는게 아니에요

범신론이나 만유재신론에 근거하여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는게 아니다 라는건 잘 아시죠 그죠

그건 독일에 관념론에서 나온 그런 사상이에요 아주 그 바퀴벌레같은 그런 나쁜 주장인거에요 그거는요 그게 이제 화이트 헤드나 몰트만 같은 사람을 거치면서 오늘날 기독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데 그런거는 아닙니다.

아무튼 그렇게 인간은 자연에 장악되어 살고 있기에 자기들이 정의해 놓은 그 자연 밖에 그 다른 현상을 감지하게 되기도 해요

왜 자연에게 장악되 있어요..인간이, 자연을 장악하고 정리한게 아니라 인간은 자연에게 장악되어 있는 아주 제한된 존재란 말이에요 그래서 자기를 장악하고 있는 그 자연이 때때로 이 카오스로 감지되기도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제한된 이성을 갖고 있는 인간이 자기들이 정의해 놓은 그 제한된 자연밖에 진짜 자연을 감지하게 될때 그 하느님의 영광을 감지하게 될때 그들은 그것을 혼돈 카오스로 인식을 하게 되고.... 그건 다른 말로 변화라는 말로 바꿀 수 있어요 變化

인간들에게 끝임없이 변화가 다가오죠 그죠 자기가 형식화 해 놓고 고착화 해놓고 어떤 틀을 만들어 놔도 늘 우리에게 변화라는게 오잖아요 그리고 변화라는게 감지가 된다 말입니다 그게 카오스 자연 하느님의 영광에 장악되어 있는 인간의 한계인 거에요

사람들은 그런 변화와 혼돈이 감지가 되면 곧 그것을 자기 것으로 합리화하여 굳히려고 하죠

자 노마디즘 들레즈의 노마디즘하고 비슷한 거에요 그죠 세상에

노마디즘은 뭐에요 늘 고착화 고정화 영토화하는 그런 본성이 인간들에게 있단 말입니다 왜 자기의 안위를 스스로 챙겨야 되거던요 그게 선악과를 먹은 타락한 인간에 본성이에요 인간들은 고걸 바로 이성 혹은 깨우침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한 인간들에 합리화 작업이나 형식화에 대한 그 시도가 선악과를 따먹은 작은 신들이 되어버린 타락한 인간에 나라는 우상만들기 작업이에요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오늘 공부를 할거에요 조금 어렵지만 잘 들어보세요 제가 쉽게 예를 들어서 반복해서 설명해 드릴께요 여러분 이걸 다 알고 가셔야 되요 오늘날 기독교가 어떻게 왜곡이 되어 있는지... 여러분이 오늘 설교를 잘 이해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잘 들어보세요 인간이 온전히 감지할 수 없고 온전히 정의할 수도 없는 그 자연 그 카오스를 어떻게 정의를 하죠? 인간이 고 자연을 어떻게 정의해요 여러분은 자연을 어떻게 알고 있어요 지금. 자연이 뭔지 만물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어요

자신들에 제한된 이성에게 포착되고 인식이 된 어떤 몇가지 법칙이나 현상을 눈에 보이는 이 실험을 거쳐서 실험을 거쳐서 형식화하고 합리화하여 정리하여 요게 자연이다 라고 이렇게 정리하죠 그죠

예를 들어서 사과는 항상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라는 현상과 ..해는 항상 동에서 떠서 서로 진다라는 현상등을 이렇게 포착하게 되면 인간은 실험이라는걸 거쳐서 만유인력과 자전과 공전이라는 그런 자연을 정의하죠 아 우주는 이런거야 만물은 이런거야 정의한단 말이에요

그러나 그게 진짜 맞아요? E = MC2 이건 하나의 공식이지만 아인슈타인이 그 훌륭한 사람이 만든 공식이지만 그게 진짜 진리입니까?

광속과 질량과 에너지 그것 자체도 우리는 제대로 정의 못해요 그런데 E = MC2 그거 자체가 진리가 될 수 없는 거에요 근데 우리는 그건 진리라고 알고 있어요 실험을 거쳤다고 해서 아니에요

 

그러니까 인간은 인간들에 실험 즉 눈에 보이는 형식과 합리성으로 자기들에 이성에 준하여 자연을 정의하는거에요

이성에 준하여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이성에 틀에서 벗어나는 건..절대 인간이 정리를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정의할 수도 없어요 그러한 인간들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정의할 때 어떻게 정의할까요

당연히 눈에 보이는 현상에 의해서 그리고 나타나는 행위에 의해서 하느님의 일하심을 판단하게 되겠죠 자신들의 선악구조에 의한 판단 ...

즉 인간에게 유익한 일이 결과로 주어지면 병이 낫고 부자가 되고 기적이 일어나면 하느님의 축복이라 그러고

인간들의 싫어할만한 일이 결과로 주어졌을때 가시적인 결과로 주어졌을 때에는 하느님의 저주라고 그렇게 하느님마저 형식화해버리는 거에요 눈에 보이는 것으로 고기까지 밖에 못보니까 인간은요

인간이 자연을 그렇게 형식화 하듯이 신마져, 하느님의 영광마저 그렇게 형식화하고 합리화하고 조작해 버린다 말입니다 하느님을

그러니까 병 낫고 뭐 부자되고 이런데는 하느님에 영광이 마구 드러난다라고 이야기 하고,

그냥 오면은 망하고 아니면 망해서 오고 이런데는 하느님의 영광이 없다는거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밥먹다가 그냥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교회는 망해서 오는 곳이 아니라 나는 와서 망했다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ㅎㅎ

 

어찌됬던 이렇게 인간은 자연을 오늘 본문의 말로 바꿔 표현하면 만물을 형식화하고 합리화하여 자기들 마음대로 이것이 자연이다라고 정의를 해요 그런데 말씀 드린것 처럼 자연은 인간이 온전히 포착하거나 감지할 수 없는 카오스에요

하느님은 그렇게 엄청난 분이란 말입니다 우리에게 포착되어진 분이 아니란 말이에요 하느님은요 온전히 포착이 안되요

따라서 인간이 정의한 자연밖에 진짜 자연이 인간들에게 감지가 되면 인간들은 곧 자기들이 형식화해 놓고 고착화 해 놓은게 있으니까 어떡게 하겠어요 곧 수정이 들어간단 말입니다 고걸 재 형식화라 그래요 왜 인간들은 그렇게 끈임없이 무언가를 형식화하는 삶을 살게 되는가.....

인간들은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 자기들 스스로 이 역사와 우주에 주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들에 가치를 스스로 챙겨가져야 되요 이제

하느님이 간섭 안하기로 했단 말이에요 생명력 안부어 준다 왜? 그들이 스스로 떠났거든요

그리고 자연과 우주조차 아니 신조차 자신들에 의해 규정이 되어야 되요 왜 내가 하느님 처럼 됬으니까.

나에게 이해되어지지 않고 나에게 인식되어지지 않는 신은 신도 아닌거에요 인제는요 고게 인간의 형식화란 말입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형식화의 과정을 인간들은 통과하게 되는 거에요

자연의 형식화 자아의 형식화 신에 형식화.... 그렇게 자기들에 지혜와 이성과 깨달음으로 자기들 마음대로 자기들 마음대로 형식화된 자연과 자아를 그리고 형식화된 그 신을 끊임없이 수정해 나가는 그 행위가 바로 인간에 우상만들기에 패턴이에요

 

지금부터 중요해요 잘 들어보세요 제가 그러한 인간들의 형식화에 대한 집념을 예를 들어 하나 설명해드릴께요 지금 여기 예배당에 앉아 계신 여성분들은요 보시다시피 모두가 깨끗하고 깔끔하고 아름답습니다 그죠 정리가 되어 있잖아요 지금은 변장과 위장에 덕이지만 애들 학교에 파자마 데이 있는것 처럼 우리 교회도 생얼데이 한번 만들어서 일어난 그대로 한번 오게 만들어야 되는데~

일단 정리가 되어 있잖아요 우리 남자들이 생각하기에 이런 외모와 부지런함을 가진 여성들은 자기가 사는 집이나 방도 아주 깨끗하고 정갈할 것이라고 추측을 하죠 추측을 해요 그런데 자기 집에 있는 여자들의 행태를 봐서 우리는 압니다.

그 여자들이 밖에서 보여지는 그 깔끔함과 아름다움과 정갈함이 집에서도 이어지던가요 우리집은 이어져요 주여 아니죠 잘 안이어지죠 적어도 이정도는 아니잖아요 이런 멋진 모습은 아니잖아요 제가 바꾸어서 질문 해볼께요

왜 여자들이 자기 집이나 부억이나 자기 방과 같은 헝클어지고 정리 안된 모습으로 밖으로 나오지 않을까요 그게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들의 자기 규정이라구요

신이 되어버린 나는 혼돈속에서 형식화의 과정을 거쳐서 나라는 가치있는 존재로 규정이 되야 된다라는 거에요 요게 하느님 처럼 된 인간들의 본성이에요

그래서 밖으로 보여지는 나는 항상 정리 정돈이 되어 있고 형식화 되어 있어야 한다라는 거에요

혼돈속에서도 나라는 자는 정리가 되어 있고 형식화 되어 있어야 되요 왜 가치있는 자로 존재해야 되기 때문에,

하느님의 은혜를 떠나서 스스로 자기의 가치와 영광과 안위를 챙겨야 하는 고런 인간들의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무엇이든지 나가 규정한 것이 진리여야 하고 나가 주인공이여야 되요

그래서 80먹은 할머니도 나가 노출이 되는 상황에서는 좋은 옷을 입고 깨끗하게 머리도 빗고 화장도 하는 거에요

인간의 그러한 형식화의 노력은 숫자에서도 여실히 들어나죠 자 사과가 한개 있어요 이걸 숫자로 뭐라 그래요 1 사과가 두개 있습니다 숫자로 뭐라 그래요 2 아이 참나 왜그러세요 그럼 영은 사과가 몇개 있어야 되요 빵이나 영이나 몇개 있어야 되요 없어야 되요

그럼 없음이라는거에 그 없음을 가리키는 어떤 숫자가 있다라는 거 이상하지 않아요 이거

인도에서 만든건데 영이란 숫자는 왜 굳이 없음을 영이라는 걸로 형식화하죠 요게 인간이란 말입니다

인간은 혼돈을 받아들일수가 없어요 카오스를 감당하지 못해요 그래서 없음에다가도 영이라는 기호를 붙여 형식화하는 거에요

그러나 그러한 인간들의 수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인간에게 온전히 포착되지 않아요

진정한 의미에서 형식화되어지지도 않아요 우리는 모르는 거에요 아에 모르는 거에요

E=MC2 아니에요 모르는 거에요 그거 진리 아닙니다 그것도 변화되어지고 언젠가 또 수정되어질지도 몰라요 모르는 거에요

그래서 인간은 모른다고 할때 진짜 아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 거에요 나는 몰라요 이게 진짜 아는 거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인간은 모르는 거에요 어떤 것도 형식화 할 수 없는 존재란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스스로 어떤 행위를 근거로 하여 요런 사람은 좋은 그리스도인 요런 사람은 악마... 지들끼리 이렇게 판단한다 말입니다 지들이 형식화 해서~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러한 인간들의 형식화에 노력은 인간에 자아를 형성하고 규정하는 데에 그대로 적용이 되요

인간들은 나 라는 자아를 규정할때 눈에 보이는 어떤 것들을 모아서 나를 규정하죠 그러죠

너를 규정할때도 마찬가지에요 눈에 보이는 어떤 것들을 모아서 그게 너 다라고 이야기해요 착하다 악하다 아름답다 추하다

눈에 보이는 것을 모아서 정보로 모아서 그걸로 나를 규정한다 말입니다 .그게 경험이고 체험이죠 고걸 다른 말로 바꾸면 과거잖아요 과거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를 딛고 앞으로 가는 겁니다 과거 그죠 경험과 체험 눈에 보이는 그것들로 행위들로 나를 규정한다 말이에요

그래서 칸트는 인간은 느낀다는 감성으로만 되는게 아니고 오성에 의해서.... 자기에 과거체험을 정리정돈함으로써 새로운자 즉 주체로 형성된다라고 이야기 한단 말이에요 과거를 규합하여 나라는 자를 규정한다 말이에요

인간은 자기 이성속에 남아 있는 이성속에 남아있는 과거를 규합해서 자아를 규정해요 그러한 경험과 체험은 무엇으로 체워져 있다... 나에 행위로 체워져 있잖아요 경험과 체험은 내과거는 나의 행위로 체워져 있단 말이에요

인간은 자신들이 어떤 행위를 하고 어떤 변화와 발전이 있었는가를 가지고 그 차이에 의해서 난 잘난자 난 못난자 난 성공한자 난 실패한자 등에 판단을 내려요

모든 인간이 다 잘나고 성공한 자의 삶을 추구하죠 그래서 모든 인간이 자신이 잘나보이고 성공한자가 되기 위한 그런 행위를 내어 놓는 거에요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하는 자신을 스스로 기특해 하고 칭찬해 주는 거에요 그게 인간 자아의 형식화에요

나에 과거 나에 행위를 갖고 나를 규정하는 거에요 형식화 해서 요게 나다 진짜 나에 대해선 잘 몰라요 그러나 눈에 보이는 나의 행위와 나에 과거 경험과 체험을 규합하여 요게 나다라고 스스로 형식화해버리는 거에요 합리화해버리는 거에요 그게 인간의 자아 형성과정이죠 그죠 인간 자아의 형식화잖아요 그게

그런데 인간은 카오스라는 혼돈속에서 살고 있는 유한하고 제한된 존재에요 따라서 늘 변화에 노출이 되죠 애써써 자신을 형식화 해 놓았는데 외부에서 변화가 주어지게 되면 인간은 곧 자신에 행위수정에 들어가요 고걸 매타형식이라고 그래요

메타가 초월하다 넘어서다 잖아요 수정에 들어가는데 고걸 매타형식이라 그래요 그 매타형식이 바로 우상에 형성이 되는 거에요 이게 오늘날 왜곡되어 전해지는 가짜 기독교인 거에요

기독교가 도덕과 윤리에 종교가 되어서 인간에 자기 규정에 도구로 쓰이고 있는 거에요

인간에 하느님 처럼에 그 삶. 고 형식화에 오히려 기독교가 도움을 주고 있단 말입니다. 인간의 마귀화에 오히려 도움을 주고 있단 말이에요 이건 아니란 말입니다

끊임없이 형식화가 일어나고 또 어떤 변화가 오면 카오스가 감지되면 또 재형식화가 일어나는데

결국 종교인들이 챙겨갖게 되는건 나에 잘남이요 나에 변화요 나에 성숙이죠 여전히 주인공은 나란 말이에요

 

더 쉽게 예를 들어 들일께요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 사람은 곧 신자라는 자아규정에 돌입하게 되죠 나는 신자니까 예수 믿었으니까 신자는 어떠해야 된다라는 형식화에 돌입하게 된다 말이에요 인제 그런데 그 사람은 오랫동안 형식화의 삶을 살던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존재가 그렇게 사니까 그런 사람이였기 때문에 자신의 신자됨을 자신에 행위에서 찾게 되죠

인간에 자아는 과거에 규합으로 정의가 되기 때문에 .....이성에 근거하여 눈에 보이는 것들로 이제 자신을 형식화 해야 되요

그래서 결심합니다 난 적어도 하루에 성경 다섯장은 읽을 거야 그리고 난 하루에 두시간씩 기도할거야, 그 사람에게는 그 결심과 행위가 이제 나가 되는 거에요 그렇죠

그런 결심을 하고 그걸 행위에 옮긴 그 자체 고 과거 내 행위 경험 체험이 나가 되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나에 대해서 굉장히 기특하게 생각하고 나에 대해서 굉장히 칭찬을 늘어놓고 찬양을 하게 되는 거에요 고게 바로 형식화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규정이 된 나에게 변화가 찾아와요 한동안 자영업을 하던 나가 사업의 실패로 직장인이 되어서 새벽부터 직장에 나가서 육체적 노동을 하게 되었어요 도저히 하루에 성경 다섯장을 읽고 두시간씩 기도하는 일에 시간을 할애할 수없게 되었어요 그때 그 사람은 곧 그 형식화된 그 자아에 수정에 들어가죠

지금에 내 상황에서의 최선은 성경읽기를 하루에 두장으로 줄이고 기도를 하루에 삼십분으로 줄이는 것이다 그것도 나의 처지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이러한 수정에 의해서 그 사람은 여전히 자신을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멋진 사람으로 규정해야 되요

그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더 훌륭한 더 깊은 종교행위 그것으로 자기를 몰아가요 수정해 가는 경우도 있어요 요걸 요렇게 자기를 재형식화하는 어떤 변화에 대처하여 자신을 끊임없이 형식화하는 요걸 메타형식이라고 하는 거에요

그렇게 형식화되어버린 자신에게 닥친 그 변화와 혼돈에 수정을 가해서 여전히 기특하고 훌륭하고 멋진 나를 챙기는 그 재형식화 그 매타형식을 우리가 우상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부처에게 가서 뭘 빌고 성황당에 가서 뭘 빌고 이런게 우상이 아니라 이게 우상의 실체란 말이에요 이것이 인간이 우상을 형성하는 과정이에요

그 매타형식에는 항상 차이가 발생하죠 수정이 되는 거니까 ...인간은 고 차이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챙겨요 그 자기 존재 의미와 가치를 챙겨갖는 고 매타형식 요걸 우상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이해가 가세요 요게 우상이란 말이에요

간단히 말하면 하느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 지어진 인간이.... 자신이 포착할 수 없는 혼돈에다가 자기들에 이성과 지혜와 깨달음을 근거로 하요 규칙을 집어 넣어서 질서를 만드는 그 자체가 바로 우상이라는 거에요

카오스에서 몇가지를 자기들이 규칙화하여 이게 자연이야 코스모스야라고 하는 그 행위 자체가 바로 우상인 거에요 우상 만들기인 거에요 고게 인간 안에서 그대로 일어난다니깐요

지가 죄인인걸 몰라요 카오슨걸 모르고 몇가지 행위를 규합하여 이게 나야 기특한 나야라고 하는 거에요 요게 우상이란 말입니다

하느님의 말씀 그걸 깨고 들어오는 거에요 아니야 여기에 더 많은 니가 있어.... 볼래 봤더니 전부 쓰레기야 내 안이 쓰레기로 가득차 있는 거에요

 

제가 한국집회에서 주님의 교회 담임목사님 남서울 교회 목사님 대 선배들이죠 거기다가 장신대 교수님들 앞에 쫙 앉아 있는데,... 여러분 목사 존경하지 마세요 목사는 하느님의 말씀과 상관없을때 쓰레기입니다 그랬더니 그냥 안절부절 어떻게 흐흐 아니에요? 쓰레기지. 그랬더니......

쓰레기에요 인간은요 하느님과 관계없을때 그냥 그 즉시 쓰레기 되는 거에요 목사 마찬가지에요 쓰레기에요

우주에 주인이 되어버린 인간에게 포착되지 못하고 사로잡히지 않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고기에서 발상되어진 고런것 그게 바로 우상이란 말이에요 그것은 여전히 나라는 그런 국가로 끊임없이 귀소하려고 하는 그 마귀적 귀소본능 노마디즘이잖아요 그게 그게 우상이라니깐요

인간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들이 전부다 감지해 낼 수 없는 하느님에게 종속되어 있는 존재라는걸 부인하고 부정하고 싶은 거에요

내가 왜 종속이 되어 있어야되 내가 왜 종이야 난 주인이야 선악과 먹었는데 왜 내가 종이야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에요

그래서 자신들에 이성과 지혜와 깨달음과 실험등으로 하느님을 정의하려고 하고 자기 자신또한 눈에 보이는 자신들의 행위로 규정해 내려하는 거에요 이 우주와 인생에 주체와 주인이 자기 자신인 거에요

그러니까 나도 내가 규정하고 하느님도 내가 규정하고 자연도 내가 규정해요 그러니까 자연에 가득차있는 만물에 가득차있는 하느님의 영광도 내가 규정해 이게 영광이야

축구골대 골 넣고 박수치는거 이게 영광이야 하느님께 영광의 박수 이게 영광이야 지들 마음대로 정의하는 거에요 하느님이 언제 그런걸로 영광받으신다 그래요 지들의 영광이지

그런데 인간들이 아무리 그렇게 재 형식화 재고착화 재영토화로 자신에 존재를 규정하고 스스로를 찬양하고 칭찬해도 불안과 공포와 공허가 끊임없이 있죠 요걸 플러스 알파라고 해보자구요 잉여

끊임없이 인간은 자기의 자아의 수정을 가하고 재형식화 재고착화를 하는데 그래도 인간들에게 남아있는게 불안 공포 공허에요 요 영역을 인간들은 신에 영역으로 지들 마음대로 결정해요 그래서 신은 고걸 해결해 주는 존재에요 요렇게 정의하는 거에요

어떠세요 오늘날 기독교가 정확히 이렇게 가고 있죠? 요걸 선악구조라고 하는 거에요 요게 마귀의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신은 내가 신으로 규정되어지는데에 부족한 어떤 결핍을 보충해 주는 존재에 머물게 되어 있는 거에요 신이 인간들에게 신이요 모든 인간은 신을 그렇게 폄하한다니깐요

모든 인간들에게 신인식이 있다 그랬죠 그래서 모든 인간들이 종교를 갖고 있다 그랬습니다 그 신인식이 뭐에요

그 인간들의 신 인식이라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인간의 형식화와 자아 수정의 그 매타형식 외에 잉여에 대한 그런 부분 그게 인간들이 인식하는 신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이 인간이 하느님을 알면서도 라고 이야기 하는 거에요 제대로 안다는 거에요

지들 마음대로 하느님을 규정하여... 자기들이 하느님을 조작한단 뜻이에요 지들이 하느님을 안다고 하는데 이런 뜻이에요

인간이 하느님을 알긴 어떻게 알아요? 그런데 왜 성경이 하느님을 알면서 라고 기록하고 있는가

인간이 하느님을 엉터리로 알고 자기들 마음대로 눈에 보이는 것으로 실험과 경험을 통해서 신을 규정하고 그 신을 나라는 우상안으로 포섭하려 한다라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거에요

제가 한국집회에서 신학생들에게 이걸 가르치면서 야 지금이라도 신학교 때려쳐 니들이 알고 있는 하느님이 이런 거라면 니들 목사되면 안되 이 새끼들아 ...너희들이 알고 있는 하느님이 지금 내가 말한 바로 이런 하느님이라면 너희들 신학교 다 그만둬라

내가 미쳤냐 땡빚내서 너희들에게 책사주고 밥값대주게 니들 목사되봐야 배나 지옥자식들만 만드는거야 그러니까 그만둬.

여러분 이건 기독교 아닌 거에요 엉터리 신을 자기들이 규정해 놓고 자기들이 조작해 놓고 그냥 믿는데요 그런데 믿는건 결국 나를 믿는거 아닙니까? 그런게 무슨 기독교에요

그게 그렇게 모든 인간은 나라는 자아를 행위.... 즉 과거를 근거로 해서 규정을 하고 외부에 변화에 의해서 끊임없이 그 자아를 재형식화해가는 그 매타형식에 의해서 존재의 의미를 찾으며 그 속에서도 매워지지않는 불안과 공허를 신으로 매우려는 시도를 하는데 그게 바로 선악과 따먹은 인간들의 선악구조라는 거에요

여러분이 기독교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다면 여러분은 신자 아닙니다 그걸 악이라 그래요

 

오늘날 기독교의 주체는 인간이에요 인간이 위로받고 인간이 격려받고 인간이 영광받고 인간이 찬양받아야 좋은 교회로 취급이 되요

한 마디로 인간과 교회가 떠야 되요 훌륭한 목사 본받을 만한 장로 멋진 교인 좋은 교회 착한일 많이하는 교회 이렇게 교회와 인간이 떠야 되요 이게 오늘날 교회 목적 아닙니까 그게 마귀에 교회인 거에요

인간은 성도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장악이 되어서 자신에 행위와 역사를 부인당하고 부정당하면서 하느님에 영광을 드러내는 그릇으로 존재해야 되는 거에요 그릇

그런데 인간들이 기고만장해서 나라는 우상을 섬기기 위해서 신을 방법과 도구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거에요 그렇게 인간에 신은 엄밀히 말해서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인 거에요

주님은 그러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죄의 종이라 그래요 이세상에 주인으로 굴림하라고 부추기는 자가 누구에요 마귀잖아요 죄의 종. 끊임없이 나를 형식화하고 재형식화하고~

그 차이에서 존재의미와 가치를 챙기고..... 그 매타형식을 우상으로 삼아 버리는 ...고 상태가 죄에 종이라니깐요

그러니까 교회가 마귀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거에요 이런 무서운 현실을 여러분이 자각하냐 말입니다

 

성경이 그래서 성경이 반복해서 주인이 되려하는 자 높아지려 하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거에요 예수님이 직접 경고하시잖아요

요한복음 831-36절 보세요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33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아무에게도 종노릇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너희가 자유롭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까?”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35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예수님에 말을 듣는자가 자유한 자라는 거에요 남의 말을 듣는 것은 종의 모습인데 주님은 그게 진짜 자유다라고 이야기해요

니 맘대로 하는거 아니고..... 누가 너에게 시켜서 니 삶을 끌고 가는거... 그게 자유래요

우리는 자유에 대해서 너무 잘못 알고 있는 거에요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려 하는자.그가 바로 죄의 종인 거에요 내야망 내비전 내소망 이루려고 하는 그자가 죄의 종인 거에요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죄의 종으로 사는 이들이 부르는 하느님은 ...실은 마귀다 라고 그래요 무서운 일입니다. 교회가 하느님,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 부르고 있는데 ....예수님이 그래요 니들이 부르는 그 하느님은 마귀야

 

요한복음 841절 보세요 41 그러니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따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사생아가 아니오.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오.”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와 여기에 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하느님이 진짜 니 아버지였다면은... 니가 나를 알아봤을거야

너희들은 예수인 나의 도움 없이는 절대 구원에 도달할 수없다라는 바로 그 사실을 알아 먹었을거야 이런 뜻이에요 그런데 난 못알아 먹잖아 니들이 할 수 있다고 지금 우기고 있는거 아니야 이런 말이에요

44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고, 너희 아비의 욕망대로 하기를 원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로서, 진리 편에 서 본 적이 없다.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을 말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버지 하느님 이렇게 불렀던 그자가 누구였어요 마귀였다라는 거에요

 

지금까지 여러분이 하느님으로 아버지로 불렀던 그 존재가 마귀가 아니라는 보장 있습니까? 그러면 어떡하실거에요?

그러니까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신앙생활해야 되는 거에요 우리는요 두럽고 떨림으로 착한일 많이 해라라는 말이 아니에요 두렵고 떨림으로 너의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과연 나는 올바로 가고 있는가 늘 겸손한 자리에서 하느님에 도우심 은혜를 구하라는 말입니다

조금 전에 설명해 드린 그러한 선악구조 속에서 자신들의 신됨을 챙기려 하는 자들은 아무리 그들이 우리 아버지는 하느님이라고 우긴다 할지라도 그들에 아비는 마귀라는 거에요

마귀는 실존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실존하는 존재에요 마귀는요 하느님 절대 의존자로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 하느님을 떠나서 스스로 자기 생애 주인이 되어 살겠다고 하는 그런자들 그런자들에 총체적인 이름이 또한 마귀에요 마귀는 세력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마귀는 어디로 부터 출발해요 나로부터 출발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마귀새끼 누구 나 내가 마귀란 말입니다 여러분 내 안에 그 마귀가 여전히 존재하잖아요

내가 대장되고 싶고 하느님 종으로 부리고 싶고 내 소원 이루기 위해 그분을 방법과 수단으로 동원하고 싶고... 이게 뭐에요 마귀지 뭐에요

거기에서 탈출하는거 그게 신앙생활이에요 그럼 여러분에 인생이 어떻게 되야 되요 여러분 소원대로 안풀려야 맞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로부터 탈출하는거 아니에요

그래야 자유자다라고 이야기 하잖아요 예수님이 말씀하시잖아요 그래야 자유자다 인간은 거기서 탈출해야 되요 그런데 인간측에서는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대는 거에요 36절에 나오죠 아들이 그들을 자유케 할 수 있다 그러죠 아들 방법은 아들밖에 없어요 아들이 그를 자유케 할 수 있어요 그게 유일한 길이에요 그걸 언약이라 그래요

나라는 우상의 종이되어 살던 자가 아들의 공로에 힘입어서 자유케 되고 주님의 종으로 편입이 되는 것 그걸 구원이라 그래요

 

바울은 그걸 알았던 거에요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종이에요 종 ..종 왜 로마서가 종으로 시작하냐 말이에요 둘로스 종

하느님은 그러한 아들에 의한 구원을 설명해 주시기 위해서 방법은 아들밖에 없다라는 것을 설명해주시기 위해서 야곱의 때에 이스라엘을 가나안에서 에굽으로 집어 넣어버리신 거에요 하느님이 집어 넣어버리신 거에요 세상에 기근을 허락해서 그러죠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미리 예언하시죠 430년 만에 나올거야.... 왜 너희들에게 구원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기 위해서 그거거든요

그리고는 그 에굽에서 어린양의 보혈 아들에 보혈을 인방과 문설주에 바른 집 즉 어른양의 보호 아래에 있는 그 집 사람들을 무상으로 사망에서 건져주신 거에요 피만 발르면 되요 못들어가요 사망이 피만보면 아들의 피만 보면 못들어가 그거에요 거기에 인간의 행위가 보태져 있어요? 아들의 피 십자가 그거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건져진 자들이 하느님에 사자로 오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오신 어린양과 아들과 함께 가나안으로 입성하게 되는 거에요 그게 구원이에요 바로 그러한 구원에 내용을 잊지 말게 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법으로 첫번째 규례로 종의 규례를 주시는 거에요

탈출기 211-6절 보세요 10계명 바로 다음에 이제 첫번째 백성들에게 떨어지는 규례가 뭔지 ...모세야 가서 이거 첫번째로 전해라 그랬어요

1 “이것이 네가 그들 앞에 세워 놓아야 할 법이다. 2 ‘너희가 히브리인을 종으로 샀을 경우, 그는 여섯 해 동안 종살이하고, 일곱째 해에는 대가 없이 자유로운 몸으로 풀려 나간다. 3 그가 홀몸으로 들어왔으면 홀몸으로 나가고, 아내를 데리고 왔으면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간다. 4 주인이 그에게 아내를 얻어 주어, 그 아내가 그에게 아들이나 딸을 낳아 주었으면, 그 아내와 자식들은 주인 차지가 되고, 그는 홀몸으로 나간다. 5 그러나 그가 나는 주인과 내 아내와 아들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몸으로 나가지 않겠습니다.하고 선언하면, 6 주인은 그를 하느님께 데리고 가서 문짝이나 문설주에 다가세우고, 그의 귀를 송곳으로 뚫는다. 그러면 그는 종신토록 그의 종이 된다.

 

여기 귀걸이 하신 분들 귀 뚫으신 분들 나는 영원히 종으로 살겠습니다라는 고백이거든요 알고 다신 거에요 귀는 그때만 뚫는 거에요 하느님은 모세가 백성들에게 세울 첫번재 규례로 종에 대한 규례를 명하세요 이게 뭐 그렇게 중요한 거라고 첫번째 규례 첫번째 규례로 이 이야기를 하실까요

신명기 1512절에서 18절까지를 보면 종에 대한 규례가 탈출기 보다 조금더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요

신명기 1512-14절입니다.

12 “너희 동족인 히브리 남자나 여자가 너희에게 팔려 와서, 여섯 해 동안 너희의 종으로 일할 경우, 일곱째 해에는 그를 자유로이 놓아주어야 한다. 13 너희가 그를 자유로이 놓아줄 때, 그를 빈손으로 놓아주어서는 안 된다. 14 너희는 그에게 너희의 양 떼와 타작마당과 술틀에서 넉넉히 내주어야 한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것을 그에게도 주어야 하는 것이다.

보세요 복을 주어 보내라 그러죠 종을,

15 너희는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이었다는 것과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구해 내신 것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이것을 명령하는 것이다.

종의 규례를 주는 이유가 뭐래요 애굽에서 너희들이 어떻게 나왔는가를 기억하기 위해서 ....종의 규례를 준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종의 규례는 죄인들이 하느님에 의해 구속되는 것에 모형.. 구원사건의 모형이라는 뜻이죠

16 그러나 그 종이 너희와 너희 집안을 사랑하고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아서, 너희에게 저는 주인님에게서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하면, 17 너희는 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어라. 그러면 그는 평생 너희의 종이 될 것이다. 너희의 여종에게도 똑같이 하여라. 18 너희는 그를 자유로이 놓아줄 때에 그것을 언짢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는 여섯 해 동안 품팔이꾼 삯의 갑절만큼이나 너희를 섬겼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자 히브리 사람이 히브리 사람의 종이되는 경우가 어떤 경우일까요 살다보면은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되고 빚을 지게 되죠

보통 히브리 사람이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는 경우는 그 빚대신에 자기를 파는 거에요 빚을 갚기 위해서 그러나 그 채무자가 아무리 많은 빚을 졌더라도 7년째에는 자유를 주라는 거에요

희년, 안식년이 일곱번 반복되면 그게 희년이죠 안식년 희년 안식일 다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거에요

고 희년 사상이 여기 나오는 거에요 안식년 사상이 여기 나오는 거에요 7년째 풀어주고 오히려 뭘 줘라 후하게 쳐줘라 복을 주어 보내라 그러죠

하느님께 빚을 진 타락한 인간들을 하느님의 아들의 공로에 의해서 자유하게 풀어주시는 구원의 모형인 거에요 구원이야기의 모형

그것도 그냥 풀어주시는것이 아니라 후하게 주어 풀어주는 거에요 이게 에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하게 되는 그 그림으로 한번 보여줬던 거에요 그래서 이스라엘이 에굽에서 나올때 금은 보화를 바리 바리 싸갖고 나오는 거에요

 

인간이 아들에 공로에 의해서 어린양의 공로에 의해서 죄에 종되었던 자리에서 풀려날때 하늘의 풍요가 함께 한다라는 것을 모형하고 있는 거라 말입니다

그래서 종을 풀어줄때 풍요하게 복을 주어 보내라 이야기 하는 거에요

아울러 하느님께서 하느님 백성들에게 종의 규례를 주시면서 그러한 구원의 이야기를 행함으로 보이라고 하신것은 하느님에 백성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가에 대한 교훈으로 주신 거에요 어느 지점으로 지향되어 갈 것인가에 대한 교훈. 우리가 이렇게 잘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 힘의 원리속의 세상에서는 종이 많을수록 강한 자가 되죠 그래서 세상은 종을 많이 확보하게 위해서 다른 말로 자기보다 아랫사람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 자신들의 전 인생을 투자하여 살아요 그죠 남보다 높아지겠다라는건 나보다 낮은 자들을 많이 만들겠다는 거 아니에요 종을 많이 만들겠다는거 아닙니까 그게 인생의 목적 아니에요 모든 인간에

 

그런데 7년마다 종을 놓아주면 어떻게 되는 거에요 계속해서 하느님이 처음자리 제자리로 돌려보내시는 거에요

거긴 니네 자리 아니야 처음 자리로 돌아가 ....어디 어머니 자궁안에 핏덩이로 돌아가라는 거에요

죽은 흙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건 니네 힘 아니니까 그런 것을 힘삼아 사는 자들은 당신의 백성이 아니라는 거에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어요 한번도 그 명령을 지킨 적이 없다 그래요 성경이 한번도 안 풀어 줬다는 거에요 하느님이 명령하셨는데 안풀어 줬다는 거에요 거기에 하느님이 진노하십니다 예레미아 3413-14절보세요

13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 조상들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던 날, 너희 조상들과 계약을 맺으며 이렇게 일렀다. 14 ‘너희는 저마다 너희 동족 히브리인이 너희에게 팔려 와 여섯 해 동안 너희를 섬겼으면, 일곱 해가 끝날 때에는 그를 보내 주어야 한다. 너희는 그를 너희에게서 자유롭게 풀어 보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너희 조상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쵸 하느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한번도 내말 들은 적이 없어 이 쌍노무 새끼들 우리 얘기 하는 거에요 우리 ...한번도 말을 들은 적이 없어

이스라엘이 그래서 북이스라엘이 망했어요 그리고 지금 북이스라엘이 망하고 남유대 조차 바벨론에게 포위되어 있는 상태에요 이제 너희들도 망한다는 거에요 내 말안들었기 때문에

그때에 하느님께서 예레미아를 시켜서 유다왕이였던 시드기아에게 말씀을 전하는 거에요 그들을 내가 너희에게 준 종의 규례를 따라 풀어주라는 거에요 종을 좀 풀어주라는 거에요 그러면 내가 바벨론 물려줄께 풀어줘 그랬어요

시드기아가 풀어줬습니다 관리들과 합의하여 다 풀어줬어요 하느님이 바벨론을 물리셨어요 그러니까 역사는 하느님에 의해 움직여 지는 거에요

그랬더니 어떻게 했어요 또 재형식화 재고착화가 일어나요 바벨론이 물러가니까 위급한 상황이 물러가니까 변화가 일어나니까 다시 잡아 들었어요 종들을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이게 하느님 앞에 죽겠다고 빌다가도 그것만 풀리면은 또 옛날로 돌아가 바벨론을 시켜서 또 포위하게 하셔 또 빌어

하느님이 물려주셔 또 옛날로 돌아가 요게 재 형식화 요게 우상이에요 요게 매타형식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아 3422절 보세요

22 이제 내가 명령을 내려, 그 군대를 이 도성으로 도로 데려오겠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러면 그들이 이 도성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불태워 버릴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유다 성읍들을 인적 없는 폐허로 만들겠다.”

그래 니들은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다시 불러서 불태워 버릴거야 니 내는 다 죽었어 이런 뜻이에요 니낸 다 죽었어

그런데 예레미아 3417절을 보면 아주 흥미있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요

17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저마다 제 동족과 이웃에게 해방을 선포하라는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해방을 선포하니, 너희를 칼과 흑사병과 굶주림에 넘겨 너희를 세상 모든 왕국에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하겠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너희들에게 이제 자유를 선언해준다 자유롭게 풀어줄께.... 그런데 결과가 뭐에요 칼과 흑사병과 굶주림이에요 사망이란 뜻이에요

그러니까 하느님에 종되었던 자리에서 자유롭게 풀어주면..... 어떻게 된다는 거에요 죽는다라는 뜻이에요

하느님이 그러는 거에요 풀어줄께 죽여버리겠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하느님의 백성들은 그렇게 죽이면 안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계속 재형식화 매타형식 재고착화 그걸로 나를 우상삼아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요 ...그게 십자간거에요 여러분 그게 예수 그리스도인 거에요

바로 그 이야기가 우리가 조금 전에 읽었던 탈출기 21장과 신명기 15장의 종의 규례안에 담겨 있는 거에요 그 규례에 의하면 종은 6년간 열심히 일하고 나서 7년째 해방이 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종이 주인을 사랑하고 자기 가족을 사랑하여 나 안나갈께요... 그러면 기둥으로 끌려가서 귀 뚫리고 영원한 종이 되는 거에요 그때 그 종은 상속권을 갖고 되요 가족이 되는 거에요 주인의 가족.

 

여러분 선악과를 따먹은 그 어떤 인간도 절대 누구의 종이되고 싶어하지 않아요 그래서 누군가가 주인의 영원한 종이 되기 위해 귀를 뚫었다는 기록이 한건도 없는 거에요 성경에

이 세상에는 자기에 종을 자기에 권세와 힘을 자랑하는 도구가 아닌 가족으로 대하여 사랑해 줄 수 있는 인간이 하나도 없어요 그게 힘의 원리와 선악구조에 빠진 인간들의 실상이에요

그래서 2000년 전에 하느님의 아들이 하느님의 종으로 이땅에 오셔서 ...종으로 이땅에 오셔서 완벽하게 종살이를 하신 거에요

그리고 우리에게 그 종살이를 전가시켜 주신 거에요 완벽한 종살이를 생사여탈에 권한까지 하느님께 차압당했죠 이게 종입니다.

그럼에도 그 주인되신 하느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시고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이신지를 아셨기 때문에 기둥으로 끌려가서 귀정도가 아닌 손과 발과 옆구리고 뚤려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에 영원한 종으로 영합이 되어버린 거에요 그게 가족이에요 그게 하느님 나라의 가족형성방식인 거에요

예수가 우리에 종살이를 대신하시고 손과 발과 옆구리가 뚫렸어요 귀 정도가 아니라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이 된거에요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진짜 영적인 귀가 뚫려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들리기 시작한 거에요. 그때부터..... 그래서 우리가 영원한 종이 되는 거에요

우리의 삶은 여전히 이렇게 내가 주인이 되어 살고 있는데..... 그 예수가 완벽한 종살이를 살아 우리에게 전가시켜 줬기에 우리가 하느님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그걸 알아 먹으라고 이 종의 규례를 첫번째 규례를 준거에요

 

사도바울이 그걸 안거에요 편지를 시작할때 로마서 시작할때 종으로 시작하는 거에요 둘로스

여러분이 그런 종이 맞아요 하느님의 종 맞습니까? 그러면 종은 어떻게 살아야 되요

주인이 먹으라는 것만 먹고 입으라는거 입고 일하라 할때 하고 하지 마라 하면 멈추는 거에요

여러분이 원하는 여러분에 주장을 주인에게 내어 놓으시면 안되요 그런면에서 여러분의 기도는 많이 바꿔야 되요

여전히 여러분이 주인이 되어서 여러분의 미래를 여러분이 개척할려고 하는 그 시도 자체가 우상섬기기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주변에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이 몇명이나 돌 것같으세요 그걸 알고 귀가 뚤려 복음을 이해하고...

그러한 하느님을 진짜 하느님으로 받아 들이고... 하느님 마음대로 하세요 이렇게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 것 같으세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러신 거에요 내가 다시 올때 믿음을 보겠느냐?없다는 것입니다 필립보서 25-11절 보세요

5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6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종노릇을 잘 했더니 하느님이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복을 주셨단 말이에요 이게 바로 성도의 인생이여야 되요 그런데 그 복은 하늘에서 받을 수 있어요 이 세상에서 땡겨서 못받아요

그거 이세상에서 미리 땡겨 달라는게 그 탕자에요 탕자, 아버지 돌아가시면 어련히 줄거 살아계신대 재산달라고 지랄떨자나요 이게 우리 아닙니까 오늘날 아니에요

이 예수가 하신 그 방법 그 형식 그대로 우리가 가는 거에요 그게 기독교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는 죄에 종에 자리에서 하느님에 종에 자리로 해방이 되요

죄에 종의 자리는 칼과 기근과 염병밖에 없기 때문에 거기서 풀려나서 하느님에 종이 되야 되요

그래서 그들은 이 세상에서 다시말해 가시적인 역사와 인생속에서 6년간의 종살이를 해야 해요 그게 우리의 인생이에요 그리고 7년째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는거 아닙니까 그게 안식일 안식년 아닙니까 이 세상에서 그래서 우리는 종살이 해야 되요

그런데 그 종살이는 죽기까지 복종해야 되는 종살이에요 자기 부인의 인생이에요 그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주인에 종으로 영원히 살겠습니다 6년동안 종살이 해보니까 힘들어요

힘들긴 한데 그 주인이 너무 좋아 나는 영원히 주인의 종이 되겠습니다 하고 귀를 뚫어 버리는 것입니다 요게 우리의 신앙생활인 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그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야 되는 거에요

그래야 이 종살이 마치는날 나 영원히 하느님종될 거에요 왜 하느님 종되서 살아보니까 그게 진짜 왔다내요

사람들은 나를 실패자라 패배자라 망했다 아프다 이렇게 판단했는데 그런데 그게 하느님에 종살이이다 보니까 결국 합력하여 나의 선을 만들어 내더군요 그게 진짜 행복이네요 저 영원히 종될래요 이거 배우는 거라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여기에서 하느님의 종처럼 사셔야 되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뜻이 자꾸 기각이 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되요 그런데 하느님의 뜻이 가시적으로 단 한번의 삶 속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났는데 어떻게 드러났냐면 그의 육신을 죽이는 거였어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인생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야 되겠냐구요 여러분의 옛사람 자아 미래에 되고 싶은 나 비전 야망 소원이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기독교라고 하는 거에요 종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감옥에 쳐넣어도 찬양하는 거고 순교자의 자리에서 찬양하는 거에요 종이니까 고린도전서 619-20

19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20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뭐하라는 거에요 종되어서 살아라는 거에요 니 몸이 니꺼야 내가 샀잖아 누가 주인이에요 하느님이 주인에요 그런데 왜 주인에게 함부로 여러분 여러분의 주장을 펴십니까 종이라면서

갈라디아서 513

13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우린 바로 이 지점으로 끌려가는 거에요 하느님의 종으로 그리고 내 천국 가족들에 종으로 그들이 믿음을 선물받은 신자인거에요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때때로 그렇게 여러분 마음대로 안풀리는 거에요 종이니까

하느님에 종이 된 성도는 계속해서 나를 부정당해야 되요 내 의견 내 소원이 기각당해야 되요

여러분은 끊임없이 자신을 부인당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계속 실망하셔야 되요

 

선악과를 따먹은 이 세상은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은 나라는 우상에 위상을 세우기 위해서 하느님까지도 형식화하여 재단하고 스스로의 행위로 자아를 규정하고 끊임없는 매타형식으로 우상을 조작해내며 그래도 부족한 부분을 신으로 부르면서 살고 있을때 요게 가짜 기독교입니다

그럴때 진짜 성도들은 하느님의 종으로 낮아지고 부인되며 부정되고 해체되는 삶을 살면서도 견뎌내며 살아내는 돌연변이들로 성경에 표현대로 하면 나그네로 이방인으로 살게 되는 거에요 잘 견디세요 그리고 잘 이기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속에서 왜 나는 하느님의 종으로만 살아야 비로소 존재가 되고 비로소 가치를 입게 되는 가를 배우시면 되요

왜 사도바울이 위대한 이 로마서 이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종이라는 단어로 시작을 하는지 아시겠죠 예수 그리스도에 . 죄에 종 아니에요 마귀의 종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종.

열심히 죽으세요 아 내 삶이 왜 이렇게 내 마음대로 안되는가 잘 아셨죠 힘내십시오 잘 가고 계신 거에요 기도하겠습니다.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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