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가르쳐 주신 사랑
작성자이순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31 조회수1,503 추천수2 반대(0) 신고

 

 어느 겨울이었습니다. 바람은 씽씽 불고 길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들도 조심스레 발길을 옮기는데 연세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버스를 기다리고 서 계셨습니다. 그러나 버스는 할머니의 느린 걸음을 기다려 주지 않고 재빨리 떠나곤 했습니다. 안쓰러운 마음에 떠난 버스 뒤를 바라보며 덩그마니 서 계신 할머니를 인도로 부축해 드렸습니다. 그때 할머니께서 손에 쥐고 있던 쪽지를 내게 보이셨습니다.

 

 큰 아들 주소라고 했습니다. 아들네 집을 가려고 나섰다가 버스를 잘못 타서 사람을 시켜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아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멀지도 않은 동네였습니다. 곧 해가 질 것을 생각하니 그대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전화로 할머니 댁의 위치를 확인하고 택시를 잡으려니 그 시간에 택시를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몹시 추웠습니다. 몇 대의 차가 또 지나갔습니다. 스웨터 주머니에 손을 넣고 떨고 계신 할머니를 바라보니, 시베리아 벌판에 홀로 서있는 듯한 인간의 고독이 느껴졌습니다. 이럴 때는 인간이 태어나 산다는 자체에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참을 더 기다리다 택시를 탔습니다. 그제야 차 안의 온기에 몸이 풀리는지 할머니는 말문을 여셨습니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작은 아들은 살림 형편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래 아들 내외가 모두 일찍 일을 나간다고 했습니다. 손자 손녀들이 학교에 가고나면 혼자 있기가 무료해서 큰아들 집에 전화를 걸면 바빠서 그런지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불현듯 큰 아들이 보고 싶어 길을 나섰다가 이렇게 남의 신세를 지게 되었다며 미안해하십니다.

 

 마음씨 좋게 생긴 택시 기사가 할머니 말씀을 귀 기울어 들으면서 다음부터는 혼자 길을 나서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차에서 내려 요금을 내려니 한사코 그냥 내리라며 손 사례를 칩니다. 순간 운전기사와 마주친 눈빛이 참으로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세상이 훈훈해진 느낌을 받으며 공중전화 부스 옆에 할머니를 세워 놓고 할머니 손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얼마 후 중학생과 초등하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할머니를 향해 손을 흔들며 뛰어 오고 있었습니다. 손녀들을 보는 순간 할머니 눈에서는 금 새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할머니 어디 갔었냐며 할머니 양쪽 팔에 팔짱을 끼고, 나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던 두 손녀, 복 많이 받으라고 목멘 소리로 가던 길을 몇 번이나 돌아보시던 그 할머니의 눈빛은 작고,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애잔한 눈빛이었습니다.

 

 엄동설한, 외출을 자제할 때면 가끔 동인지에 실렸던 이 수필을 꺼내 읽곤 합니다. 백세 시대로라면 아직 멀게 느껴지는 모습이지만, 나 역시 언젠가는 받아드려야 할 숙명이기에 가끔씩 노후준비를 깔끔히 하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묵상해보면 늙으나 젊으나 외면당한 사랑을 구걸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만 갖고 있다면, 자식이든, 형제든, 친구든, 나 싫다고 떠난 사람들에게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먼저 하느님과 통하면, 인생의 모든 문제를 쉽게 풀어 나갈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그 놈의 정 때문’이라는 노랫말 가사도 있습니다. 이런 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사람을 먼저 찾아가 풀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집회서, 잠언서, 지혜서에는 정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을 푸는 가르침을 상세히 적어 놓았습니다. 그러기에 나이가 들수록 더욱 가까이 두고 날마다 읽어야 할 책이 성경입니다.

 

 사랑은 가볍고 정은 무겁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내 곁은 떠난다 해도 그 사랑으로 우리를 받아 줄 교회가 있습니다. 끝까지 영적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면, 온갖 불행을 자초하는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정은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내신 하느님 품, 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둥지에서 평화를 누리며 사는 것이, 진리에서 캐낸 최고의 가치를 지닌 모습으로, 믿지 않는 이들에게 비춰질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아픔을 주고 떠난 이들을 위한 기도는 놓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도 기도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빌어 주어야 합니다. 그때래야 비로소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너나없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입니까? 그걸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할머니와의 만남이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