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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1.0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02 조회수1,664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와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1요한 2,22-28

사랑하는 여러분,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23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24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26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28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 요한 1,19-28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몇 해 전에 서해 인근의 섬을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파도가

아주 심한 것입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책을 읽기도 힘들었고,

글을 쓸 수도 없었습니다.

그 어디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눈을 감고

가만히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무엇인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흔들리는 배 위에서 바늘귀에

실을 꿰기가 쉬울까요?

어쩌면 우리들의 마음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흔들리는 배처럼 마음 안에

고민과 걱정이 끊이지 않아서

계속해서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면 문제의 해결을

가져올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실수가 많아지면서

또 다른 걱정이 우리를

뒤덮게 되겠지요.
급할수록 되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흔들리지 않는 내 마음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손에 가시가 박혔습니다.

무엇인가를 급하게 하고 있어서

가시 빼는 것을 뒤로 미룹니다.

그러나 가시가 신경 쓰여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가시를 먼저 빼내야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의 가시를 뽑아주시는 분,

평화와 기쁨을 주시는 분은

주님뿐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주님은 항상

 나중에 만나야 하는 분이었습니다.

나의 일이 끝나고 시간적인 여유가

많이 생길 때에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이 첫째 자리에 계셔야 하는데,

세상의 것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주님은 항상

맨 뒷자리였던 것은 아닐까요?
주님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을 떠올려 봅니다.

 그는 광야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남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면서

 회개하고 주님을 믿으라는

 그의 외침에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갖게 됩니다.
‘혹시 그리스도가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은 “당신은 누구요?”

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 질문에

“맞소.”라고 대답했다면 아마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 세상의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의 삶이 중요한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라고 대답하면서 오로지 주님을

증언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주님이 첫 번째 자리라는 원칙에

 벗어나지 않으셨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유혹에 자주 흔들립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이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

(나희덕)


새해를 맞이해서 부모님께 세배했습니다.

용기

(이규경, ‘어쩌구 저쩌구’ 중에서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야 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못해요.
반전이 있는 시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용기란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외치는 것보다는,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용기가 아닐까요?

  

용기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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