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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03 조회수1,777 추천수11 반대(0)

 

1986년입니다. 군에서 자대배치를 받았고, 저는 곧 제대할 선임병과 함께 지냈습니다. 선임병은 제게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알려 주었습니다. 때로는 엄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부드럽기도 하였습니다. 같은 종교를 믿었고, 제가 신학생이었기에 특별히 잘 해 주었습니다. 선임병은 저와 1달 정도 같이 있다가 제대하였습니다. 선임병과 함께 있을 때는 편하였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답답하였습니다. 선임병 없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선임병의 자리는 너무나 컸습니다. 업무처리는 미숙했고, 내무반의 생활도 힘들었습니다. 함께 있을 때 좀 더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함께 있던 신부님이 오늘 피정과 휴가를 갔습니다. 앞으로 한 달은 제가 이곳 성당에서 지내야 합니다. 미사를 봉헌하고, 혹시 모를 일이 생기면 해결해야 합니다. 꼼꼼한 동창 신부님은 성당 가는 길, 마트 가는 길, 식사 준비하는 것을 알려 주었는데 막상 혼자서 하려니 조금 걱정이 됩니다. 군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수녀님과 봉사자들이 계시기에 큰 걱정 없이 지낼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길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메시아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에게 높은 자리를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으며, 겸손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저도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본당 신부님 대신에 미사를 봉헌하고, 성사를 주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말은 듣지만 그것을 판단하거나,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습니다. 저를 믿고 피정을 간 신부님이 돌아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손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해가 뜨면 밤하늘의 별들은 모두 태양에게 자리를 양보합니다. 별들은 밤하늘을 지키는 것으로 자신이 몫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성인, 성녀들은 모두 오늘 세례자 요한처럼 예수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우리가 잡은 핸들이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듯이, 사람의 몸은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누군가를 위한 삶을, 본인의 영적인 성장을 위한 노력을,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새해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깊이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미워했던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면 좋겠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고 불평하기보다는 멈추면 비로소 볼 수 있는 것들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에는 영광과 찬미는 하느님께 돌리면 좋겠습니다. 수고와 노력은 나의 몫으로 알면 좋겠습니다. 오늘 나의 말과 행동이 이웃에게 따뜻한 위로와 기쁨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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