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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1.0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07 조회수1,576 추천수5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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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제1독서 1요한 3,22―4,6

사랑하는 여러분,

 22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4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4,1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2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의

 영입니다. 그 영이

오리라고 여러분이

전에 들었는데, 이제 이미

세상에 와 있습니다.
4 자녀 여러분, 여러분은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서

거짓 예언자들을

이미 이겼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분께서

세상에 있는 그자보다

더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5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영을 알고

또 사람을

속이는 영을 압니다.

복음 마태 4,12-17.23-25

그때에

12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13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14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5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17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24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25 그러자 갈릴래아, 데카폴리스,

예루살렘, 유다, 그리고 요르단

건너편에서 온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세 가지 친구의 유형이 있습니다.
1) 영원한 친구입니다.

언제든 나를 위해 그 자리에

있어주는 친구입니다.
2) 좋을 때만 친구입니다.

상황이 좋을 때에는 함께 있지만,

좋지 않아지면 슬그머니

피하는 친구입니다.
3) 피상적인 친구입니다.

만나면 유쾌하기는 하지만,

아무런 깊이도 없고 진정한

관계도 없는 친구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친구는 몇 번입니까?

 당연히 1번을 선택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입장을 바꿔보지요.

하느님의 입장에서 여러분은

몇 번의 친구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까?
“성당에 가면 마음이 편해져요.

”라는 말만 할 뿐, 하느님과 어

떤 관계도 맺지 않는

피상적인 친구는 아닐까요?

아니면 좋을 때만 하느님을 찾고,

어려울 때에는 불평과

 불만 속에서 슬그머니 피하는

좋을 때만 친구는 아니었을까요?
영원한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상관없이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 곁을

지킬 수 있는 영원한 친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정말로 내 옆에서 나와 함께 하는

 친구를 생각해보십시오.

이 친구에 대한 믿음 없이 함께

 할 수 있습니까?

굳게 믿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옆에서

 함께 있어 줍니다.

하느님과 영원한 친구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굳은 믿음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태 4,17)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십니다.

사실 이제 막 공생활의

시작점에 있을 때였지요.

아직 당신 권능의 증거를

보이지 않았을 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분을 찾아가고 육적으로

또 영적으로 아픈 사람들을

 데리고 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주님께 대한 믿음 없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의 이 모습 자체만으로도

주님께 대한 작지 않은 믿음을

보여 주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병자들을 데리고 먼 길을

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믿음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치유해주십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라야 할 때입니다.

우리 영혼도 많은 질병을 앓고 있으며,

 주님께서는 우리의 질병을 기꺼이

치유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주님의 선포를 믿고 따라야 합니다.

즉, 회개하고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벌떡 일어나

주님께로 달려가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주님과 진정한 영원한

친구의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가족이라면,
친구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대품 피정자 파견 미사 때, 주교님과 사제들의 강복.

하느님 편에서...

병으로 고통 중에 계신

형제님께서 자신의 이 고통을

치유해주지 않고 더 큰 고통만

주신다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거꾸로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답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가

거꾸로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에 대한 관념이나

식에 비교하면 하느님은

잘못하시는 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분 사랑에 대한

관념이나 방식에 비교하면

내가 잘못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은 공평해지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언제나 정의로우십니다.

정의는 똑같이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각각의 사람을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이해하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요?

하느님의 편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우리가 되어야

영원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1월 8일에 서품받을 신학생과 부제들.

그리고 교구장님과 신학교 교수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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