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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1.1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11 조회수1,750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년 1월 11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제1독서 1요한 5,5-13

사랑하는 여러분,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3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 루카 5,12-16

12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1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14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15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1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신년이 되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서 미래의

일에 대해서 예측을 합니다.

올해에도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그밖에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서 예측했습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예측을

들으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한편 어떤 이들은 이 예측에

비관하고 절망에 빠지면서

걱정을 안고 살기도 합니다.
버클리 대학교 교수인 필립 테틀럭은

 10년 동안 284명의 전문가들이

 쏟아낸 82,361건에

대한 예측들에 대해서

 그 진위여부를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대단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예측들은

아무렇게나 즉흥적으로

숫자를 댔던 사람들과

별 차이 없이 거의

맞는 것이 없었습니다.
미래는 그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소

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비전문가와 별 다를 바 없다는

 테틀럭 교수의 발표처럼,

사람의 힘으로는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에

굳이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 지를 확인해보고

싶어서 유명한 화가를 찾아가서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재능이 있습니까?”

라고 물어보았지요.

유명한 화가는 흘깃 보고는

곧바로 말했습니다.
“재능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는 편이 훨씬 더 낫습니다.”
이 말에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났을 때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화가라 할지언정 어떻게 잠깐 보고서

재능이 있다 없다를 쉽게 판단할 수

 있을까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찾아가

“재능 없는 것을 어떻게

단번에 알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지요. 그 화가는

“제가 신이 아닌데 어떻게

단번에 재능이 없는 것을 알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곧이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만약 제 말을 듣고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라면

능이 있어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말이 아닌 주님의 말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만이 전지전능하시고

미래라는 당신의 시간을

통제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주님 말은

외면한 채 사람의 말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예수님 앞에 나와서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던 나병환자의 모습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나병을

하느님으로부터 큰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어떤 치료도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말이

아닌 주님께 집중했고,

그 결과 주님으로부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라는 말과 함께

치유의 은총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을까요?

어렵고 힘들수록 주님의

말씀에 집중해보십시오.

이 말씀 안에서 필요한

은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상처를 마주 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파울로 코엘뇨)


코시모 로셀리의 '나병환자를 치유하시다'.

진실한 말

(‘좋은 글’ 중에서)

사람이 말로 짓는

네 가지의 업이 있습니다.
남을 속이는 거짓말,

 남에게 하는 욕지거리,

남을 이간하는 서로 다른 말,

겉과 속이 다른 발림 말.
생각해보면 모두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실한 말은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인생에서 우러나는 것입니다.
세상에 쓰임이 되는 말,

거름이 되는 말,

빛과 소금이 되는 말....
내가 뿌린 말의 열매를

모두 내가 거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람은 말을 경작하는

농부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우리는 나의 이웃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었을까요?

혹시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주로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진실 되게

 다가오시듯이 우리 역시

나의 이웃들에게 진실한 말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모습이며,

주님의 은총을 가져오는 길입니다.

 

(어떤 말을 하십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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