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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1.1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12 조회수1,550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1월 12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제1독서 1요한 5,14-2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14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5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16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7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21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복음 요한 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24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종종 만납니다.

사실 처음 신학교에 들어가서

그리고 신부가 되고서도

 한참 동안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우선 제게 이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너 정말로 결혼 안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 수 있어?

어떻게 여자 없이 살 수가 있지?”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함께 대화를

 나눌 주제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은 돈, 직장, 결혼,

 육아 등의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이 주제들을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별 연관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쁨을 가지고 모임에 나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인이 되는 것

같아서 자리가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점이 생겼습니다.

4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친구들은

 “결혼 안 하고

어떻게 혼자 살 수 있느냐?”

는 질문을 아예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혼자 사는 네가 부럽다.”

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함께 나누는 주제가

 물질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옮겨지면서 이제는 서로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제게 행복에 대한

질문도 하고,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에 대해

서로 공유를 하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젊었을 때에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보니 더 중요한 것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더 중요한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키워나갈 때

행복하게 된다고들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유다인들과 말다툼을 하지요.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요한보다

 더 위대하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요한과 예수님의 두 집단

사이에 어떤 경쟁 관계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에게 모였던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 곁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 시기와 질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이런 시기,

질투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바로 세상의 기준으로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말합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인간에 지나지 않는 요한은

자기가 하늘로부터 받은 것만

 줄 수 있을 뿐이라고 하지요.

즉, 우리가 받은 것만으로

 만족해야지, 더 많은 것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은

 종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고 합니다.
세상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과연 주님을 세상에 환하게

드러내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것이 인생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다.

(괴테)


주님 앞에서 한 없이 작아졌던 세례자 요한.

역경을 기회로

(이나가키 히데히로, ‘싸우는 식물’ 중에서)

조건이 좋은 곳에서는

약한 식물이 강한 식물에

질 수밖에 없다.

강한 식물이 침입해

오지 않을 것 같은,

조건 나쁜 장소가

잡초의 서식지다.

 말하자면 김매기가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밭이나 사람들에게

 쉽게 밟힐 수 있는 환경이 오히려

잡초가 생존하는 데 필요하다.

 잡초는 이런 역경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숙명을 짊어졌다.

잡초의 전략은 역경을

기회로 이용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식물의 씨앗은

땅속에 있으므로 햇빛을 받으면

 싹을 틔우지 못한다.

반대로 잡초 씨는 햇볕을 쬐면

싹 트는 성질이 있는 것이 많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잡초 씨는 땅속에서 발아할

기회를 기다린다.

잡초를 뽑으면 땅이 뒤집혀

 종자가 햇빛을 받는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인간이 잡초를 뽑아 주위 식물이

없어졌음을 나타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잡초는 이때를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앞 다퉈 싹을 틔운다.
잡초에게는 밟히는 것도 기회다.

 봄나물 중 하나인 별꽃은

시골길이나 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지만,

의외로 도시 한복판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그 이유는 별꽃 씨에 별사탕처럼

돌기가 그득 붙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별꽃 씨를 밟으면

그 돌기가 흙과 함께

신발 바닥에 붙는다.

이런 식으로 신발 밑에

묻은 별꽃 씨가 먼 곳까지

옮겨져 도시 한복판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역경을 기회로 삼는

 잡초의 생존능력을 바라봅니다.

우리 역시 잡초처럼 내게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을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대처해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잡초보다

뛰어난 존재이니까요.

(세례자 요한 이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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