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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세례 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13 조회수2,197 추천수9 반대(0)

 

김구 선생님, 안중근 의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평생을 사셨습니다. 그분들이 남긴 것 중에는 서예 작품이 있습니다. 글에 힘이 넘치고, 생기가 나는 것은 글 자체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그분들의 인품이 글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중에도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완용의 글도 당대에는 뛰어난 글이었습니다. 필체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완용의 글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글이지만 그저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 글에 혼과 기와 묘가 없기 때문입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서울대교구 교구청 축성을 해 주셨습니다. 교황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친교를 나누는 공간을 프란치스코 홀로 정했습니다. 교구청은 새로 지어서 크고 아름다웠지만 교황님께서 축성하시면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황님의 인품과 교황님의 따스함이 함께 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쁘신 일정 중에서도 기꺼이 교구청 축성을 해 주신 교황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도 교황님께서 축성하신 건물에서 일했기 때문입니다.

 

부친께서는 제가 사제서품을 받았을 때 선물을 하나 주셨습니다. 붓으로 시편 126장을 써 주셨습니다. 제가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족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버님의 필체는 예술적으로 뛰어나지는 않습니다. 국전에 입선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아버님의 유품이 된 족자는 세상 어느 서예 작품보다 제게 더 소중합니다. 그 글에 아버님의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사제로 충실하게 살기를 바라는 아버님의 기도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면 아버님께서 남겨주신 시편 126장의 글을 봅니다. 그러면 위로가 되고, 용기가 나고,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글이 아니라 아버님의 혼, , 묘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세례를 줄 때는 물을 사용했습니다. 물은 정화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함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물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따뜻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세례의 의미는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물은 거룩해 졌습니다. 거룩하신 분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물은 하느님의 은총이 드러나는 표징이 되었습니다. 바로 성사가 된 것입니다.

 

이제 세례는 단순히 깨끗이 정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함 삶을 살라는 것도 아닙니다. 만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라는 것만도 아닙니다. 다른 이를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만도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사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이제 세례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례는 지난 날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주는 성사가 되었습니다. 죄와 악 그리고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 모양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따라서 세례를 받은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은총과 사랑은 없을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오늘 제1독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실하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고,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지 않았으며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사셨습니다. 세례는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는 필요조건이지만 그것이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는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은 아닙니다. 오늘 제2독서는 우리가 가야할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세례 축일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변화된 삶을 살았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세례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이름이 예뻐서, 부르기 좋아서, 생일에 가까운 축일이 있어서 세례명을 정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명을 정하는 것은 이미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성인과 성녀들의 삶을 본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분들의 도움을 청하며 세상이라는 험난한 파도를 이겨내기 위해서 세례명을 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나의 세례명을 한번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한 분들은 죄의 용서를 받으며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세례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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