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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1.1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14 조회수1,583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1월 14일

연중 제1주간 월요일

제1독서 히브 1,1-6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4 그분께서는 천사들보다

 뛰어난 이름을 상속받으시어,

그만큼 그들보다

위대하게 되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 천사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6 또 맏아드님을 저세상에

데리고 들어가실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여라.”
복음 마르 1,14-20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어렸을 때 어떤 친구의 집에

놀러가서 큰 부러움을

느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장난감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 집이 그렇게 부자도

아니었습니다.

 부러움의 이유는 책이었습니다.

사실 저희 집에도 책은

참으로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은 하나도 없었지요.

 대부분은 아버지께서

보시는 책들이었고,

그나마 있는 것도 지금처럼 가로로

편하게 읽는 책이 아니라 세로로

읽어야 하는 질 나쁜 누런 종이에

 인쇄된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의 집에는

만화로 되어 있는 세계명작전집,

 위인전기, 과학백과 사전 등이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부러웠겠습니까?
친구에게 “너는 책이 많아서

정말로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이거 장식용이야.

나는 한 번도 이 책들을

 펼쳐본 적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친구의 부모님께서는 책 읽는

아이가 되길 원했기에 이렇게

많은 책을 사줬겠지요.

그러나 책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이 친구는 장식용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이 많은 책들이

엄청난 부러움의 대상인데

정작 본인은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남들이 부러워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능력과 재주가 없다,

건강하지 않다, 배운 것이 없다,

나이가 많다 등등의 이유를 들어서

 스스로를 정말로 부족하고 형편없는

 존재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가지고 있지 않은 것만 소중하다고

 생각하기에 자존감도

잃은 것이 아닐까요?
오늘 첫 번째 제자들을 부르시는

주님을 보면서 가장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당신 계획의

일꾼으로 쓰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세상의 눈으로는

터무니없는 일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하느님의 일을 할 사람인데

세상의 눈으로는 부족하게 보이는

사람을 부르실까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상의

눈을 따르지 않습니다.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기에,

이는 곧 모든 사람이

 다 부르심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단, 여기에 조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 제자들이 보여주었듯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라면 이 지상 생활의

그 어떤 것도 연연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내게도

 주님의 부르심은 똑같이 주어집니다.

이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가장 평범한

한마디 말도 제자리에

놓이는 순간 빛을 발한다.

(로베르 브레송)

(도메니코 길란다이오의 '사도들을 부르심)


변하지 않는다

(‘좋은생각’ 중에서)

2015년 11월 프랑스 언론인

앙투안 레이리스는 아내와 공연을

관람하다가 테러리스트들의

테러로 아내를 잃고 맙니다.

큰 슬픔에 빠진 레이리스는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금요일 저녁 당신들은

내 평생의 사랑이자 내 아들의

 어머니인 여인의 생명을 훔쳤다.

하지만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

나는 결코 당신들에게

증오라는 선물을 주지 않을 테니,

당신들은 내가 두려움에 떨고,

 이웃과 시민들을

경계 어린 눈빛으로 보고,

안전을 확보하려 자유를

희생하길 원하겠지만 실패했다.

나는 변하지 않는다.
이제 아이와 나, 둘만 남았으나

 우리는 이 세상 누구보다 강하다.

 내게는 당신들에게

허비할 시간이 없다.

낮잠에서 깬 아이를

돌보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이제 17개월이다.

늘 그랬듯 아이는 간식을 먹을 테고

우리는 함께 놀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평생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며

당신들에게 저항할 것이다.

 당신들은 이 아이의

증오조차 갖지 못할 터이니..”
미움과 폭력을 평화로 결연하게

맞선 앙투안 레이니스의 글입니다.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합니다.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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