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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1.1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16 조회수1,672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9년 1월 16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제1독서 히브 2,14-18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8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복음 마르 1,29-39

그 무렵 예수님께서

 29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신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공부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학교에 들어가서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너무나도 낯선 학문을 접해야 했고,

지금 어느 나라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언어도 배워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공부를 못하면 신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글쎄 F학점을 맞으면

유급을 해야 하고,

두 번의 유급이면 퇴학을 당합니다.

공부가 어렵고 재미없다 하더라도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무조건 공부를 해야만 했습니다.
기말고사를 얼마 앞두고서

공부해야 할 것, 외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한 친구가

세워 논 계획표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열 페이지씩 공부한다는

 계획이었고,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그림까지 삽입해서 멋지게 작성했더군요.

체계적이었고, 이 계산대로 공부를

한다면 시험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제 자리에 돌아와서는 몇 시간에

걸쳐 하루 몇 페이지를

공부할 것인지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아주 잘하는 선배가

우연히 제 계획표를 봤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거 전형적으로 공부 못하는

애가 망하는 패턴이잖아?”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렇게 계획을 세웠던 친구가

공부를 아주 잘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저 계획만 잘 짤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역시 이 길을

쫓아간 것이었지요.
우리는 많은 계획들을 세웁니다.

하지만 그 계획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던가요? 아닙니다.

계획대로 된다면 세상에 실패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계획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낼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길이 바로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에 가십니다.

사람들은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누군가는 사위가 자기 딸을

챙기지 않고 밖으로 돌아다녔기에

화병에 걸린 것이다 라고도 말하지만,

그보다 당시에 그 지역에서 열병이라고

일컫는 병의 목록에는 화병은 없고,

파상열(허약하거나 빈혈로 발생),

간헐열(장티푸스와 비슷),

 말라리아였습니다. 모두 중병입니다.

실제로 마르코 복음에서는

‘누워있다’라는 표현을 매우 위독한

상태에만 쓰는 ‘카타케마인’이라는

 헬라어를 사용합니다.

그만큼 위중한 상태였던 것이지요.
아픈 사람이 자기 집이 아닌,

사위의 집에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요.

바로 예수님을 만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계획대로 되었습니까?

그 계획을 완성시켜주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손을 잡아 일으켜주시지요.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이신 주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의 손을 잡아서 일으켜주시면서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나는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고,

당신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함께라면

우리는 멋진 일을 할 수 있다.

(성녀 마더 테레사)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시는 예수님)

열정적으로 살아갑시다.

요즘이야 강의 부탁이 별로 없지만,

사순시기와 대림시기에는 특강을 하러

많이 외부로 나가게 됩니다.

제 강의를 들으신 분들 중에서

꽤 많은 분들이

 피드백을 해주시는데,

그 중에서 제일 많은 것은

“신부님의 열정을

볼 수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저의 열정을 보는 것이 좋을까요?

자신의 열정도 아니고

남의 열정인데 말이지요.
열정을 보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도

 큰 힘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의 열정은 나만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함께 잘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열정은

전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강의를 할 때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사실 저 혼자 방방 뛰면서

 열정적으로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그 열정은

금세 식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단 몇 사람이라도

열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시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그 결과 조용했던 사람들도

열정 안에서 좋은 감정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저 역시 사람들의 열정을

 보게 되면서 더 힘차게

강의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우리는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사람들이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아닌 힘을 빼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700페이지가 넘는 2018년도의 새벽을 열며 묵상 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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