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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런 마음이면 하느님을 안 뵐 수가 없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18 조회수1,318 추천수1 반대(0) 신고

 

 

 

금강산 절부암에 내려오는 전설

 

옛날 한 나무꾼이 금강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잠시 바위 곁에 앉아 쉬면서 우뚝 솟은 절벽 위를 올려다 보게 되었어요. 근데 그 절벽 위에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한 아리따운 선녀가 온갖 재롱을 부리며 놀고 있었죠. 이 순간 나무꾼은 그 선녀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불쑥 치밀었죠.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늙은 어머니를 모시면서 모진 가난 속에서 나이를 먹도록 장가도 들지 못하고 있었던 미랑에게는 그게 간절한 바람이었죠.

 

마음이 조급해져 나무꾼은 당장 절벽 위로 뛰어 올라가 사랑을 고백하기로 작정하고 깎아지른 절벽을 올라가려고 애를 썼지만 자꾸 미끄러지기만 했죠. 선녀는 해죽 해죽 웃으며 나무꾼의 마음을 가늠해 보기로 했죠. 이 가파른 절벽을 올라올까? 선녀는 내심 자기가 있는 곳까지 올라와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하며 줄곧 아래를 내려다 봤지만 계속 미끄러지는 겁니다.

 

나무꾼은 계속 시도를 했지만 나중에는 지쳐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죠. 선녀는 그럼 그렇지. 저 나무꾼이라고 무슨 힘으로 여길 올라온담 하며 그도 여느 총각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총각은 지게에 있던 도끼를 뽑아 들고 바위를 찍기 시작했죠. 나무꾼은 아무리 애써도 올라가기 힘든 바위를 아예 끊어버릴 심산으로 있는 힘을 다해서 도끼로 바위를 깨기 시작했죠. 그러자 도끼날에서 불꽃이 튀며 바위가 산산이 부스러지기 시작합니다. 그걸 보고 있던 선녀는 마침내 나무꾼의 대장부다운 씩씩하고 용맹스런 기상에 그만 마음이 흔들렸죠.

 

아래로 소리를 질렀어요 여봐요, 왜 도끼로 바위를 찍나요? 아가씨에게 가려던 참이오. 그만 두세요. 제가 내려가겠어요. 선녀는 날개옷을 훨훨 날리며 총각이 기다리고 서 있는 골짜기로 내려가 물었죠. 당신은 누구신데 여기 왜 오셨나요? 난 금강산에 사는 미랑이라 합니다. 우연히 나무를 하다가 아리따운 당신을 보고 꼭 만나고 싶어서요. 저는 하늘나라 선녀입니다. 잠시 금강산이 아름다워 놀러왔다가 당신의 장부다운 모습에 감동하여 내려왔습니다. 당신과 함께 이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미랑은 너무 기뻐 선녀의 손을 덥석 잡았죠. 이 이후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참 아름다운 전설이죠. 만약 제가 미랑이었다고 상상만 하여도 정말 행복하겠네요. 그럼 지금부터 이 전설에 대한 저의 단상을 한번 설명해보겠습니다. 먼저 이 전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는 최초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글쎄요. 저는 장가를 가지 못한 나무꾼이 선녀를 만나려고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전설에서 선녀를 하느님이나 예수님으로 나무꾼은 믿음생활하는 저희로 비유하려고 합니다. 그럼 이 대목에서 나무꾼의 그 마음은 하느님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비유하겠습니다.

 

하느님이나 예수님을 만나려면 그 분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하고 가슴에 사무치듯 애절해야 이루어 질 것 같습니다. 그럼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서요 선녀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올라가려고 죽을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참 나무꾼이 애처롭기 짝이 없네요. 오르면 미끄러지고 자꾸 미끄러지니까 가슴이 타들어가죠. 이러다간 진탕 고생만 하고 선녀들은 하늘로 올라가는 건 아닐까? 온갖 군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겁니다. 일단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녀는 그 나무꾼의 마음을 가늠해보려고 하지만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죠.

 

왜 그럴까요? 나무꾼이 지쳐 주저앉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럼 그렇지. 그 나무꾼도 여느 총각들과 다름없다고 하는 걸 보면 지금까지 이 나무꾼처럼 자기를 보려고 많은 나무꾼들이 자기가 있는 곳으로 오려고 했지만 다 실패를 했기에 이 나무꾼도 역시나 그 사람들과 같을 거라고 짐짓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어찌 되었나요. 미랑은 지게에 있던 도끼로 바위를 찍었던 거죠. 주저앉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선녀를 꼭 만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겁니다. 바위를 찍으면서 튀는 불꽂이 있었죠.

 

저는 이걸 이렇게 해석해볼게요. 그 불꽂은 바위에서 나타난 현상이지만 선녀는 "그 불꽂이 선녀 자신에 대해 불타오르는 나무꾼이 가진 사랑의 스파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저는 그렇게 비유하고 싶습니다. 그 튀기는 불꽂이 선녀의 마음 속에 사랑의 불씨가 옮겨져 선녀의 마음에도 나무꾼에 대한 호감의 감정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죠. 이 대목에서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도 저희의 정성에 감동하시면 그때부터는 하느님 마음 속에서도 저희에 대한 사랑이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겁니다.

 

나무꾼의 늠늠하고 대장부의 기상에 마음이 움직여져서 선녀는 결국 나무꾼에게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 난 거죠. 결국은 어찌 되었나요. 선녀는 내려와서 미랑이에게 왜 여길 왔는지 확인하고 나무꾼이 선녀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간절히 전하자 결국 선녀는 나무꾼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나무꾼인 우리 믿음의 자녀가 하느님을 만나고자 하는 절절한 마음을 갖고, 아무리 힘들어도 나무꾼이 잠시 지쳐서 주저앉았지만 원래 자기가 선녀를 만나려고 가슴에 품었던 그 초심을 잃지 않았던 거죠.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처음 세례 받을 때 하느님께 드린 그 약속을 되새기면서 물론 믿음의 길을 가다가 넘어지기도 하지만 거기서 좌절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끊임없이 오뚜기처럼 일어난다면 나뭇꾼이 그토록 꿈에 그리던 선녀를 만나게 되는 것처럼 저희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나무꾼은 선녀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지는 못했지만요, 다시말해 우리가 바라는 결과를 이루지 못해도 선녀가 나무꾼의 기상을 높이 샀기 때문에 선녀가 직접 내려온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그 결과보다는 하느님을 만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시고 저희에게 직접 손수 다가오신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가진 단상을 한마디로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하느님께서는 저희가 부족하고 넘어져도 그곳에서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나 하느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저버리지만 않으면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저희의 마음 중심을 보시고 직접 손을 내밀어 주셔서 저희를 일으켜 세워주시고 기꺼이 저희와 함께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해바라기처럼 하느님만 바라보며 하느님을 항상 생각하는 그런 마음을 가진다면 하느님께서는 그런 영혼과 가슴 속에 들어오셔서 저희와 같이 동행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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