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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1.1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19 조회수1,385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1월 19일

연중 제1주간 토요일

제1독서 히브 4,12-16

형제 여러분,

12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13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14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15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16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복음 마르 2,13-17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5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본당 신부로 있을 때,

한밤중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본당 신자가 지금 위급하다면서

병자성사를 청하는 것이었지요.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병원 응급실에 가서

병자성사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평소 낮에 보았던 병원과는

다른 또 다른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한밤중의 응급실은 거의 전쟁터 같더군요.

급한 환자들도 많이 들어오지만,

술을 많이 마시고 다쳤는지 의료진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사람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하긴 종종 응급실 의료진에 대한

폭행에 대한 기사를 볼 수 있지요.

그런데 그 모습을 직접 보았던 것입니다.
자신을 고쳐줄 의료진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는 환자의 모습을 보고서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물론 아파서 정신이 없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런 행동이 결코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치료를 잘 받으려면 자신의

모습부터 바꿔야 합니다.

즉, 의료진을 믿고서 자신을

맡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믿지 못하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한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남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인 레위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 가서 음식을 잡수셨지요.

그 자리에는 다른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서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앞 다투어 말합니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마치 의사가 병자들에게 다가갔다 해서

뭐라고 하는 비난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 치료가

필요한 이들과 함께 하고 있을 뿐인데,

그들은 그 치료 자체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비난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도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들 역시 영적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었지요.

하지만 이들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병이 없다면서 깨끗하게

치료해주실 의사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스마트폰을 생각해보십시오.

처음에는 외형에 큰 관심을 갖습니다.

하지만 일단 구입하고 나면

외형에 대한 관심이 떨어집니다.

이 스마트폰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에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외적인 것, 그것은 순간일 따름입니다.

순간의 만족이 중요할까요? 아닙니다.

영원한 만족을 추구해야 합니다.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은

영적인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만족을 바라는

겉모습만을 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과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비난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행동들은

모두 영원한 만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주님께 내 모든 것을

탁하면서 영적 치료를 위해서

 노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인생은 여러분이 삶을 이기느냐,

아니면 삶이 여러분을 이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삶을 이기십시오.

그것이 최선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헨드리크 테르브뤼겐의 성 마태오를 부르심)


하느님께 감사~~~

초등학교 때, 매일매일 일기를 써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께서 매일 검사를 하셨거든요.

제출했던 일기를 받고 보면 항상 “참 잘했어요.”

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몇 글자라도 적어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읽어보지도 않고 성의 없이

도장을 찍는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런데 어느 날에는

선생님의 글씨가 적혀 있는 것입니다.

 약간의 꾸중이 담겨 있는 글이었습니다.

읽어보지도 않고 대충

도장만 찍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꼼꼼하게 읽어보셨나 봅니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이 일기로 인해

혼나지 않을까 싶어서 두려웠습니다.

이때 생각했지요.

‘그냥 아무 말 없이 도장만 찍어주셨으면....’
지금 우리의 삶에 일일이 간섭을

안 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를 보시지 않는 것일까요?

생각해보니 일일이 간섭하지 않고

가만히 계신다는 사실이

더 감사한 것 같습니다.

(참 잘했어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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