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1월 21일(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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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1-21 | 조회수1,316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1월 21일 월요일 [(홍)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아녜스 성녀는 3세기 후반 또는 4세기 초반 로마의 유명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열네 살 무렵의 어린 나이에 순교하였다. 청혼을 거절한 데 대한 앙심을 품은 자의 고발에 따라 신자임이 드러났으나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유약한 나이에 보여 준 그녀의 위대한 신앙의 힘’ 을 높이 칭송하였다. 교회는 아녜스 성녀를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증언하고자 정결을 지킨 순교자로 기억하고 있다. 성녀는 한 마리 양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표현되고 있다. 말씀의초대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느냐고 하신다.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말씀입니다. 5,1-10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지정된 사람입니다.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짊어지고 있으므로,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 대사제가 되는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영원한 사제다.” 이 세상에 계실 때,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화답송◎ 시편 110(109),1.2.3.4 (◎ 4ㄴㄷ)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너의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 멜키체덱과 같이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왕홀을 시온에서 뻗치시리이다. “너의 원수들을 다스려라.” ◎ 멜키체덱과 같이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주권이 너와 함께하리라. 거룩한 빛, 새벽 품에서 나는 너를 낳았노라. ◎ 멜키체덱과 같이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뉘우치지 않으시리이다. “멜키체덱과 같이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 멜키체덱과 같이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복음환호송◎ 히브 4,12 참조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 ◎복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복음입니다. 2,18-22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단식할 수 없다.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담아야 한다.” ◎오늘의묵상◎ 혼인 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침울한 표정으로 단식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신랑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모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식은 분명 좋은 것이지만, ‘상황’에 맞지 않으면 하지 않느니만 못합니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좋다고 하는 것을 모든 상황에 일반화시키는 오류입니다. 오늘 예수님께 찾아와 왜 당신의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느냐며 따지는 바리사이들과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구약의 법에 모든 것을 맞추는 사람들이었고, 요한의 제자들은 옛 스승에게만 머무르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절대적인 법은 자연법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법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법의 제정자’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우리가 따라야 할 법이자 모든 법이 생겨나게 된 기준이십니다. 한 자리에 돌을 놓았다면, 우리 같은 사람은 어디 놓아야 할까요? 바둑 공인 9단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셨을까?” 를 알기만 하면 우리는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고 말합니다. 그분께 순종하기 위해서는 “그분이라면?”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이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하셨을 것 같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가장 완전한 순종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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