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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경은 우리를 구속하지 않는다.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23 조회수1,452 추천수2 반대(0) 신고

 


동경은 우리를 구속하지 않는다.

힘찬 소망

독일어 'Sehnsucht’

(그리움, 동경, 갈망)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 단어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어 역시

독일어가 지닌 의미들을

모두 담고 있지 않다.

그리스어 '에피테미아'epithymia는 본디

'욕망, 갈망, 열망'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의 어근은 '티모스' thymós

정서적인 영역이다.

'티모스'란 본디 공기,

폭풍,

움직인 것과 움직이는 것,

생명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어

'에피타미아'는 원래 자극,

흥분,

인간의 모든 활력으로 채워진

격렬한 욕망을 의미한다.

그래서 루카는

예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

"네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에피타미아 에피티메사

Epithymia epethymesa. mit Sehnsucht)

바랐다"(루카 22,15).

여기에서 예수는 정신뿐 아니라

제자들의 갈망,

욕망,

힘찬 소망,

마음의 자극,

흥분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그리스 철학에서 이 단어는

주로 정신과 대립하는

육체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으로 경시되었다.

성경에서도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불경스럽고 신을 거스른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라틴어 '데시데리움'desiderium은 원래

'갈망,

열망,

욕망'을 의미한다.

이것은 분명 '시더스'sidus(, 천체)

와 관련이 있다.

라틴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은 동경(갈망, 욕망)

불에 대하여 또는 가지지 못한

어떤 것에 대한 불타는

동경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우리는 별을 볼 수 있을 뿐

잡을 수는 없다.

스토아철학에서는 욕망을 주로

육체적인 욕구와 동격으로 취급했다.

그러다가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러 이 단어는 다시 동경이라는

원래의 의미를 얻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인간적인 갈망과 욕망은

결국 이 세상을 초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관념을

받아들여 자연적 욕구

desiderium naturale

학설을 발전시킨다.

인간은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 싶은

태생적 욕망을 지닌다.

인간은 하느님과 하나가 될 때만

'인간됨'을 완성할 수 있다.

독일어 'Sehnsucht'

'Sehne'()'Sucht’

(중독, 병적 욕망)

두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활을 쏘기 전

시위의 팽팽함을 연상시킨다.

그러므로 동경은 내적인

시위의 팽팽함과 관련 있다.

인간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동경이

목적하는 것으로의 도약을 기대하거나

과녁을 맞추는 화살을 기다린다.

두덴 독일어 사전에 의하면

'sich sehnen'

(그리워하다. 동경하다)라는 말은

독일어권에서만 사용된다고 한다.

이 단어는 ''과는 관계가 없고,

중세 고지 독일어 'senen'

(괴로워하다. 사랑하면서 갈망하다)

과 관계가 있다.

이 단어에는 가슴이 아프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이루지 못한 사랑을 연상시킨다.

연인들은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상대방을 그리워한다.

동경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정신은

온통 애인에게만 향해 있고,

그는 자신의 사랑에 응답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한다.

그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다.

'Sucht'(중독)라는

단어의 어원은 원래

'구하다. 찾다'가 아니라

'허약하다. 병들다' 이다.

그래서 'Sucht'는 병적인 갈망,

병적인 의존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경은

술이나 마약과 같은 물질,

또는 명성이나 영향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동경은 고향,

보호,

행복,

사랑,

아름다움,

성취 등을 목적으로 한다.

동경의 목표는 완성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끔

사랑 때문에 병을 앓듯이,

영원에 대한 동경이 너무 강해서

일상생활에 무감각해질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동경 때문에 병들었다고 느낀다.

'그리워하다, 동경하다'

'중독'의 결합은

지난 세기에 동경'이라는

단어가 경멸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람들은 이 단어에서 병적인

어떤 것을 연상한다.

그들은 현재의 구체적인

도전에 맞서는 대신

성취할 수 없는 것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19세기 전반)

동경으로 가득했다.

아이헨도르프와 노발리스는

낭만적 동경의 증인들이다.

그들과 그들의 시대에는

동경이 철저하게 긍정적이고

가치 있는 감정으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동경이

현실도피라는 뜻 으로 오용되면서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단어를 외면해 왔다.

긍정적 의미를 상실했던

이 단어는 우리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동경'

본디 의미를 회복하게 된다.

동경없는 삶은 지루하다.

동경이 없는 인생은

너그러움과 활기를 잃고

비밀스러워진다.

우리는 ''의 숨겨진 힘과

중독의 병적인 타성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살고 있다.

오직 한쪽 극만이 '평온함'

혹은 긴장 속에서 산다면

인간은 병에 걸린다.

평온함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쉽게 안락함으로 침몰한다.

오직 자신의 활로만,

자기 자신의 힘으로만

건물을 짓는 사람은 금세 지친다.

그러면 활은 끊어진다.

중독된 사람은 자유를 잃는다.

긴장하고 또 이완시키는

동경과 만나야 한다.

그리고 중독은

동경의 활력과 힘으로

변화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중독은 치유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많은 중독은

아마도 억압된 동경의 표현일 것이다.

동경은 바야흐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동경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다시 자기 자신을

마주 대하는 것이다.

동경과 마주하고,

동경을 인정하고,

우리의 삶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중독에서 해방될 수 있다.

동경은 우리를 구속하지 않는다.

동경은 우리의 마음을 넓게 하고,

자유롭게 숨쉬게 한다.

동경은 우리의 인생에 품위를 부여한다.

(동경/안셀름그륀 지음)

- 이온화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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